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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뉴질랜드 로드트립] 레이크 넬슨 국립공원을 지나 웨스트코스트의 관문 웨스트포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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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 타즈만을 떠난 다음 여정은 레이크넬슨 국립공원을 거쳐 웨스트 코스트로 가는 것이었다. 남섬에서의 주 목적 중 하나인 빙하 트레킹을 하기 위해 폭스 글레이셔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 곳까지는 웨스트 코스트 해변도로를 타고 3일 정도 달려야 했고 그 길 위에 대한 다른 정보는 아직 하나도 없었다. 큼직큼직한 목적지 외에 다른 것은 정해진 게 없었기에 여행 중 안내소에 들를 때마다 챙겨둔 브로셔들을 뒤지며 중간에 들를 만한 곳이 있는지 체크하는 것은 늘 내 몫이었다. 

 

 

레이크 넬슨 국립공원 인근은 토양이 좋아서인지 과수원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포도, 사과 등 많은 과일 농장들이 있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농장 분위기와는 달리 굉장히 대규모의 부유해 보이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

 

 

 

 

도로 주변의 과수원들은 엄청난 높이의 나무들을 담장처럼 심어놓은 곳들도 보였는데 가든디자인 공부를 잠시 했었던 나로선 이 나무 한그루만도 가격이 엄청날텐데 하며 감탄의 연속. 수확철은 이미 지난터라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과수원들을 몰래 둘러본 후 길을 재촉했다.

 

 

 

 

레이크 넬슨 국립공원의 가장 큰 호수인 레이크 로토로아를 차아가는 길. 네비가 또 한번 말썽이었다. 안내하는대로 따라가 헤매다가 결국 이 곳은 아니라는 결론에 허탈. 그때 내 눈 안에 들어온 풍경. 운전하느라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친구에게 나는 조용히 얘기했다.

 

"잠시 창밖을 봐~ 얼마나 예쁜지... 역시 여행은 때론 길을 잃어야 할 필요가 있어"

 

눈앞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엔 노랑으로 물든 잎새와 앙상한 가지들로 가을을 알리는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멀리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시야가 끝나는 그 지점까지 우리 외엔 아무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고요함. 이런 평화로움... 길을 잃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던 순간이다. 잠시 차를 멈추고 말없이 그 고요함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그리고 특정한 대상도 없는 무한한 감사함으로 벅차오른다.

 

 

잠시 후 차를 돌려 원래의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호주에서 떠나오기 전, 뉴질랜드는 여름이 좋다며 이미 뉴질랜드 여행을 가기엔 너무 늦인 계절이라고 만류하던 주변 친구들 때문에 조금 망설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난 좋은 여행이란 최상의 컨디션 안에서 하는 여행이 아니라 언제 어느 순간에도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느끼며 그 안에서 경험하고 대처하면서 무언가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장마철에 무전여행을 하며 쏟아지는 비 속에서 하루 종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었던 적도 있었고 인도에서는 사막에서 추위에 떨기도 했고 그보다 북쪽인 다르질링에서는 추워서 한숨도 못잔 날이 많았다. 보라카이에 머물던 동안에는 태풍 세개가 지나갔다. 생각해보면 나는 '적기'에 여행한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했던 여행 중에 단 한 순간도 그런 부분이 아쉬웠던 적은 없었다.

장마철이었기에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측은하게 여겨 당신 집에서 하루 묵어가라고 권하셨고 소박하지만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세상이 얼마나 따뜻한지 느낄 수 있었다. 인도에서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누군가 도움을 주는 이들이 생겨 '관계'나 '소통'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갖는 계기가 되었다. 보라카이에서는 숙소가 물에 잠기는 특이한(?) 경험을 하기도 했고 흔하게 얻을 수 없는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는 여행하던 그 시기 날씨가 쌀쌀해서 좀 힘들 때도 있었지만 덕분에 더욱 멋진 풍경들을 만나기도 했다. 노랑, 주황, 빨강으로 아름답게 물든 뉴질랜드. 역시 소신껏 여행을 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도착한 레이크 로토로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잔잔하고 아름다운 호수 풍경을 보고 있으니 뭔가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저 위에 사랑하는 연인이 나란히 앉아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자연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상대에 대한 마음 때문인지 아님 둘 다인지, 마구 벅차오르는 감사함과 행복한 마음에 울컥해버릴지도..그 때 뒤에서 자기도 사진좀 찍자는 키위 아저씨 때문에 상상의 나래는 올 스탑. 상상을 너무 깊이 하다보니 감정이입이 지나쳤다. ㅋㅋ

정신을 차리자 거세진 샌드플라이들의 공격. 얼른 빠져나와 다시 이동. 아직 갈길이 멀다.

 

 

웨스트코스트 해변 도로를 타기 위한 관문인 웨스트 포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캄캄한 세상이었다. 일단은 무작정 해변가로 가봤다. 보통 해변을 끼고 있는 마을은 해변에서 취사 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캠핑도 가능했다. 하지만 웨스트포트의 해변은 입구 부터 캠핑 금지 팻말이 보였고 너무 조용하고 어두둔 것이 전혀 무언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다시 돌아 나갈까 하던 찰나 해변 앞에 세워진 캠퍼밴 한대가 보였다. 일반 승합차를 개조한 차량이었다. 괜히 반가운 마음에 일단 옆에 차를 세우고 인사를 건넸다. 영국에서 온 그들도 이제 막 도착해서 취사를 하던 중이었다. 야외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모닥불까지. 우린 서로의 차량을 구경하고 마실 차를 나누고 얘기를 나누다 내친김에 우리 차량으로 초대해서 같이 밤늦도록 게임을 즐겼다. 무슨 게임이었는지 잘 생각은 안나지만 나만 처음 해본 게임이었는데 대부분 내가 이겼던 것은 기억한다. 잘 모르니 머리를 쓰지 못해서 직관에 따르는게 때론 더 유리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전날은 너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는데 이른 새벽 일어나 바라본 풍경은 정말 스산하기 이를데 없었다. 자연재해를 입은 폐허 같은 느낌. 괴기스러운 분위기의 그 곳을 왠지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떠나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우리가 다음으로 갈 곳은 푸나카이키 팬케이크 록스. 뉴질랜드 도착 전까진 전혀 알지 못한 곳이었는데 뉴질랜드 내에서는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볼 수 있었고 웨스트 코스트에서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기도 한 곳. 빙하 트레킹을 위한 폭스 글레이셔로 가는 길 중간에 있기 때문에 더더욱 꼭 놓쳐서는 안 될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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