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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우다이뿌르] 라자스탄의 새하얀 호반도시 우다이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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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펫에서 오후 8시에 출발한 버스는 약 14시간 정도 걸려 뭄바이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깨끗한 슬리핑 버스에서 정말 편안히 잘 잤던 유일하게 힘들지 않았던 이동으로 기억한다. (이 좋은걸 두고 왜 난 그동안 당장이라도 부서질듯한 구멍 숭숭 뚫린 낡은 로컬버스만 타고 다니며 그 고생을 했을까..ㅠㅠ)

 

버스에서 휴식시간에 혼자 여행하는 캐나다 여자아이를 알게 되었는데 버스 안의 모든 이들이 뭄바이가 목적지인데 반해 우리만 우다이뿌르가 목적지라는 공통점으로 대화를 하면서 금새 친해졌었다. 뭄바이 같은 북적이고 공해 심한 도시는 딱 질색이라는 점에 의견을 모으며 우린 뭄바이에서 우다이뿌르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잠깐 경험했던 뭄바이는 심한 교통체증과 온통 브라운(명암만 다른)이었던.. 갈색 먼지가 공기중에 뿌옇게 떠다니고 여기저기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던 혼란스러운 도시...수도인 델리보다 더 거대하고 더 혼잡해 보였다. 건너뛰는 걸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실 마음 속으로 망설이고 있었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 망설임은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캐나다 친구의 이름은 세라.

갓 스무살이 된 어린 친구였지만 딱 봐도 똑똑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연구원이나 언론인에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론리플래닛은 얼마나 열심히 정독했는지 방금이라도 부서져내릴듯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런데 택시와 흥정을 하던 중 최종 금액이 책에서 나온 것보다 20루피 정도 높았다. 나는 이 정도면 적당한 가격이란 느낌이 들어 오케이 했지만 고집스러운 세라는 단호히 '노'를 외쳤다. 흥정을 하는 세라의 모습은 너무 저돌적이었다. 기사들이 가격을 제시할 때마다 '노 웨이'를 외치며 신결경질적으로 반응했으며 '라이어'라는 말도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내가 오케이를 했던 가격 이하로는 다들 절대 못간다고 비웃었지만 세라는 고집스러웠다. 그렇게 30분 넘게 실랑이를 하는 데 이미 지쳐버린 나는 뒤로 물러나 그녀의 결정만 기다렸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화내면서 길에 버리고 있는 30분이 20루피보다 아깝지 않은 걸까..

 

우리의 여행은 책이 출판된 것과는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20루피정도는 충분히 물가상승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결국 그녀도 지쳤는지 30분 전에 불렀던 그 가격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방금 도착한 것도 아니고 이미 수개월째 여행중이라는데 이런 여행방식을 고수하면서 저 친구가 얻고 있는 건 대체 뭘까... 차안에서도 여전히 1km당 얼마이고 우리가 가는 곳까지 몇km니까 얼마가 맞는건데 하면서 열을 내는 모습에 두손두발 다 든 나는 우다이뿌르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바이바이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우다이뿌르행 티켓을 사는데.. 매사 앞장서는 성격에 영어권에서온 세라에게 티켓팅을 맡기고 나는 벤치에 잠시 앉아있었다. 그때 또다시 '노 웨이'를 외치는 고함소리에 무슨일이냐며 달려간 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우다이뿌르행 버스가 문제가 생겨서 1시간 늦는다던가.. 뭐 그런 이야기였다. 그런데 인도 액센트에 여전히 익숙하지 못한 세라는 버스가 없다는 얘기로 잘못들은 것이다. 고함소리에 몰려온 동료들은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웃으면서 세라를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가 겨우 1시간 늦는다고 그렇게 미친듯이 화를내니 얼마나 황당했을까..딴데도 아닌 바로 인도에서!

 

얘기를 끝내고 세라에게 내용을 전달하며 흥분을 가라앉힌 후 버스를 기다리는데 "너 영어 어디서 배웠어?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해?진짜 대단하다!" 라며 감탄을 계속하는 세라...캐나다 사람한테 영어 잘한다고 칭찬받다니ㅎㅎ 누가 들으면 진짜 잘한 줄 알겠네ㅡㅡ;

'내가 설마 캐나다 사람인 너보다 영어를 잘해서 알아 듣겠니..남이 하는 말에 진심으로 귀기울이지 않으니 못알아듣는거지..'

이 일을 계기로 역시 소통이란 언어의 문제가 아니란 것에 더욱 확신하게 됐다.

 

 

드디어 라자스탄 지역에 도착! 지금까지와는 또다른 모습의 인도가 펼쳐졌다. 아름다운 피촐라 호수 주변으로 형성된 순백의 도시 우다이뿌르..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내가 방문한 1월에는 호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단 것.. 사람들은 호수가 가득찬 9, 10월 쯤이 우다이뿌르를 방문하기 가장 좋은 시즌이라고 한다.

 

 

마침 지금 막 우다이뿌르를 여행한 터키 아저씨가 보내온 사진을 보면 호수가 가득 차있고 하늘도 푸른게 훨씬 깨끗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스산한 겨울 풍경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뭔가 몽환적이고 이국적인 것이 오히려 더 멋져 보이는 듯도... 그리고 좋은 점은 역시 비수기라 방값도 저렴하고 여행자들도 거의 없었다는 것~!

 

 

여행자의 거리인 작디쉬 만디르 근처의 적당한 곳에 숙소를 잡고 동네를 돌아다녀봤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보니 여행내내 사진찍어달라며 붙잡히는 일이 많았는데 이 곳에서도 역시 헬로우~하며 원래 알던 친구처럼 친근하게 인사를 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우릴 좀 찍어줘~하며 이미 자리를 잡고 포즈를 취하는 아이ㅎㅎ 아마도 사진가들은 인도를 정말 좋아할 것 같다. 피사체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우다이뿌르에서 꼭 봐야할 곳은 우다이뿌르의 상징인 하얀 성 시티팰리스.. 관광지는 절대 안가겠다 하는 이라도 이곳만은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다.

 

 

 

외관도 멋지지만 내부가 더 매력적이었던 곳. 시티팰리스에서 바라본 피촐라 호수와 그 위에 떠있는 레이크 팰리스.

 

 

호수 위에 호젓한 섬처럼 서있는 레이크 팰리스는 원래 왕실의 여름 궁전으로 지어졌지만 현재는 초호화 호텔로 운영되고 있다. 은은한 조명으로 빛나는 새하얀 성은 늦은 저녁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인다.

 

 

왜 다들 호수에 물이 가득 찬 시기에 방문하기를 추천하는지 깨달은 건 늦은 저녁 마을을 돌아다니다 우다이뿌르의 야경을 봤을 때이다. 호수를 둘러싼 마을의 빛들이 호수에 반사된 모습은 호수를 더욱 아름답게 했다. 지금도 멋진데 물이 가득 차있을 때의 거울같은 투영은 얼마나 더 멋질까!

 

 

작디쉬 만디르와 강가우르 가트 사이에 있는 바고르 키 하벨리라는 저택에서는 저녁마다 민속 공연이 펼쳐진다.

 

 

 

1시간 정도 되는 공연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만들어진 것이라 너무 세속적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나도 사실 보는 내내 마말라뿌람에서 우연히 만났던 댄스 페스티발의 전문 무용가들의 공연과 비교해 너무 아마추어같다 싶었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볼만하다는 생각이다. 전통적인 대저택 안에서 선선하고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세계 곳곳에서 온 여행자들과 어울려 공연을 감상하는 시간이 사실 공연 자체보다도 더욱 풍요로운 느낌이 들게 했다.

 

 

우다이뿌르가 좋았던 또 하나는 멋진 풍경의 레스토랑과 예쁜 까페들이 있기 때문. 

 

 

위 사진은 드림헤븐 게스트하우스 루프탑 레스토랑으로 기억하는데 일단 전망이 뛰어나고 뒹굴거리면서 쉴만한 편안한 좌석들이 준비되어 있다. 함피의 망고트리, 바라나시의 라가카페에서처럼 뒹굴거리며 책도 읽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하루종일 머물러도 좋았던 곳.

 

      

 

가트 주변으로는 예쁜 카페들도 찾아볼 수 있다. 진짜 서양식의 고급 케익을 만드는 카페도 있어서 오랜만에 인도를 벗어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뿌리에서의 허니비 까페 이후로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순수한 인도만으로도 좋긴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런 일탈도 필요하다.

 

 

 

자이살메르로 가는 야간 버스를 예약하고 남는 시간에 헤나를 하고 그림과 타블라 수업을 한시간씩 들었다. 별 생각없이 들어간 곳이었는데 우다이뿌르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곳.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더욱 친절한 곳이기도 했다.

 

 

헤나를 하고 말리는 모습.. 다리에 온통 빈대자국이 선명하다.ㅠㅠ 문제는 저 흔적들이 여전히 흉터로 남아있다는것... 거기에 호주, 뉴질랜드에서 빈대 못지 않게 끔직한 가려움을 유발하던 샌드플라이의 흔적까지 더해져 더 심한 상태이다. 할머니가 볼 때마다 여자 다리가 이게 뭐냐며 혀를 차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림수업에선 가르쳐주는대로 따라 그려보았는데 생각보단 쉬웠다. 물론 전문가들처럼 잘 그리진 못하지만ㅎㅎ 재밌었던 경험. 저러고 있을 땐 몰랐는데 이제 보니 사진 뒤쪽으로 똥광과 비광이ㅋㅋㅋ

 



기나긴 인도여행에서 또하나의 힐링 장소였던 우다이뿌르. 너무 관광지 느낌이어서 장기로 있기에 추천할만한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인도스러우면서도 인도같지 않은 독특한 분위기에 이틀 정도는 머물러도 좋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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