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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씨포(Hsipaw)-만달레이(Mandalay) 열차트립, 그리고 방랑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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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여행도 막바지를 향해 간다...

만달레이에서 방콕으로 가는 티켓을 미리 끊어 놓았기에 미얀마에서 내게 남은 시간은 이제 단 하룻밤...

이동시간이 짧은 버스를 타고 만달레이에 일찍 도착해 만달레이 시내 구경을 할지 오래 걸리더라도 만달레이 일정을 포기하고 인레호수에서 만났던 여행자가 추천한 열차여행을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미얀마에서 열차도 한번은 타줘야지 싶어 후자를 택했다.

열차 여행은 현지인의 생활을 보다 더 깊이 만나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워낙 작은 마을이기에 숙소에서 역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다.

필요 없는 짐은 모두 방콕에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 맡겨 놓고 온 덕에 몸도 편하고 교통비도 절약되고 여러모로 너무 좋다배낭여행은 정말이지 얼마나 짐을 줄이느냐에 따라 얼마나 좋은 여행이 되느냐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무거운 짐 때문에 이동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제대로 여행을 즐길 마음의 여유도 그만큼 줄기 때문..

여행을 오래 하다보니 이제는 노하우가 생겨 30L배낭으로도 거뜬히 세계일주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역무원은 만달레이까지 가는 기차는 시간이 맞지 않으니 2시간여 떨어진 역까지 가서 트럭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추천했다.

한국인이라는 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역무원ㅋ

한국인을 실제로 만난 건 처음이라면서 한국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미얀마에서 그 찬양은 늘 대장금으로 부터 시작되어 한국 음식영화음악으로 전개되었다한참 아저씨와 수다를 떠느라 잠시 플랫폼에 내려놓은 짐을 잊고 있었는데 확인차 바라보니 동네 떠돌이 개가 내 배낭에 격정적으로 영역 표시를 하고 있었다.

 

순간 흥분한 나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나가 개를 쫓기 시작했지만 아직 볼일이 덜 끝난 아이는 내 눈치를 보며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ㅠㅠ

결국 일을 마치고 나서야 유유히 떠나는 놈...

 

아아아 이건 현실이 아닐꺼야...ㅠㅠ

망연자실한 내 모습과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 본 플랫폼의 모든 사람들은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 나 이외의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한 커플이 물티슈를 조용히 건넸다.

웃음을 열심히 참는 표정으로 물티슈를 다 써도 된다며....;;;;

그나마 레인커버를 씌워 놨으니 천만다행인가...ㅠㅠ



열차가 들어오자 간식거리들을 파는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역시 모두 집에서 만들어온 것들..

 

나는 감자칩 봉지 하나와 달달한 캔디 같은 것을 샀다.

유통기한이 적혀 있지 않는 게 여전히 불안했지만 배가 너무 고팠기에 그냥 맛나게 먹었다.

탈이 나지 않은 걸 보면 문제 없는가보다 하며ㅎㅎ



열차는 두 종류의 좌석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딱딱한 나무 의자고 다른 하나는 푹신한 의자다.

가격 차이가 있어서 저렴한 걸로 끊으려고 했는데 역무원 아저씨가 말렸다.

그 좌석으로 오랜 시간 이동하면 엉덩이가 부서지고 말꺼라면서ㅋㅋ



영어를 아주 능숙하게 구사하는 분은 아니라서 자세한 얘기는 없었는데 열차에 타서 좌석을 확인하자마자 큰일날 뻔 했다는 아찔함ㅋㅋ

10시간 정도를 가야는데 저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았다면 어쩔 뻔 했는지..;;

 

게다가 이 낡은 열차는 도착할 때까지 내내 태풍 속을 달리는 배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푹신한 의자도 문제는 있었는데 빈대가 나올 것 같은 눅눅하고 지저분한 매트 때문...

다행히 열차 내 직원이 의자의 머리 부분에 씌울 하얀 시트 하나씩을 나눠 주었다.

이때 나를 극진히 챙기던 역무원 아저씨가 나타나 열차 내 직원에게 나를 소개하며 잘 챙겨 주라 당부를 했고 덕분에 나는 특별히 시트 하나를 더 얻을 수 있었다.



드디어 출발~

차창 밖으로 느릿느릿 스쳐 지나가는 평화로운 풍경들...

인생이 늘 이렇게 평화로움으로만 가득하다면 참 좋을 텐데...



끝없이 펼쳐 지던 옥수수밭..비가 개인 후의 청량한 색감..



우리나라와 참 많이 닮아 있었던 미얀마의 시골 풍경..

일본에서 알았던 미얀마 친구는 늘 한국과 미얀마의 비슷한 점에 대해 얘기했었다.


미얀마 음식은 한국음식과 비슷해..

미얀마의 현재는 한국의 과거와 비슷해..


그냥 흘려 들었던 얘기들이었는데 그 친구는 정말 진심으로 한말이었음을 느낀다.

신기하게도 멀리 떨어진 두 나라는 정말 비슷한 점이 많았다.

기본 정서부터 다른 어느나라 보다 가장 많이 닮은 느낌이다.

왠지 남의 나라 같지 않고 정감 가는 미얀마!



정차하는 역마다 가내 수공업으로 생산된 과자 봉지들을 판매하는 아주머니들~

이젠 뭐 그냥 믿고 먹는다.



아예 식사를 판매하는 곳도 있었는데 미얀마의 음식들은 정말이지 한국인의 입맛에 딱 이다.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보니 음식도 다양하긴 한데 기본적으로 미각이 한국인과 비슷한지 너무 기름지거나 너무 달고 짜지 않다.

태국의 자극적인 음식들과는 달리 특히 미얀마 샨족의 음식들은 정말 우리나라 반찬특히 전라도 음식과 많이 비슷하다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하고 고소한나물 무침같은 반찬들..

전엔 태국이 음식 천국이라 생각했는데 미얀마 음식과 발리 음식을 접하고 보니 태국 음식에 대한 애정도가 뚝 떨어졌다.

아웅~~그립다미얀마 음식발리 음식...

나중에 미얀마 음식점을 차릴까 보다ㅎㅎ



일본에서 허름한 음식점을 운영하던 괴짜 아저씨가 떠올랐다.

전세계의 각종 요리들을 메뉴로 하고 있는데 이는 직접 아저씨가 여행하면서 수집해 온 레시피들..

가게를 운영해 모은 돈으로 언제든 문을 닫고 떠나 한동안 방랑 생활을 하다가 멋진 사진들과 새로운 레시피로 돌아오는 사람..

일본 매체에도 여러 번 소개된 적이 있는 은근 유명한 아저씨였다.

 

한때는 그 삶을 동경했었다.

지금도 부럽긴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란 걸 깨달았기에 더 이상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은 지양하고 싶다.

물론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만나 함께 떠돈다면 더 좋겠지만^^

 


씨포에서 만달레이로 가는 열차 여행의 하이라이트.

이 새하얀 강철 다리는 열차 여행을 추천한 여행자에 따르면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다리래나 뭐래나..

아무튼 어마무시하게 높은 다리임에 틀림없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아찔한 높이에 게다가 곡선인 이 다리를 무사히 건너기 위해 열차는 속도를 죽이고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 조심스레 조금씩 조금씩 움직였다.



왜 하필 이런 커다란 협곡에 철길을 놓을 생각을 했을까...

삐그덕삐그덕 끼익끼익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열차 때문에 당장 무너지는 다리와 함께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온몸에 힘을 주고 있느라 쥐가 날 것 같았다.;;



보통은 버스보다 열차 여행이 편한 법인데 미얀마만큼은 예외였다.

버스들이 의외로 좋았기도 했고 열차가 이상하게 너무 심하게 흔들려서 멀미가 날 정도였다.

한번 정도는 경험 삼아 타 볼만 하지만 장거리에는 비추인 미얀마의 열차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다.

만달레이까지 가는 트럭버스는 약 2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래도 처음 출발할 때는 공간도 넉넉하고 갈만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1시간쯤 갔을 때 길에서 차를 멈춰 세운 사람이 마을 안쪽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짐이 좀 있으니 같이 가자는 식으로 얘길 했는데 차가 도착한 곳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양의 짐과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와 그 사람들간의 가네 못가네 하는 실랑이와 가격 흥정이 한참 있었고 그 곳에서 1시간여를 허비해야 했다해가 질 무렵 결국 합의를 봤는지 짐을 싣기 시작하더니 트럭 안은 짐과 사람들로 꽉차 온몸을 최대한 구부리고 접어야만 했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최고로 끔찍하게 힘들었던 시간이었던 듯..ㅠㅠ



세어 보니 그 좁은 공간에 총 30명정도가 타고 있었다양쪽 의자에 통조림에 눌러 담은 듯 꼭 붙어 앉은 사람들 가운데에 짐들과 엉켜 앉은 듯 선 듯 있는 사람들차 뒤쪽에 매달린 채 가는 사람들까지...

미얀마에 온 후 처음으로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상황...

심지어 도중에 화장실 한번 들리지 않은 채 그렇게 2시간 이상을 더 간 후에야 난 겨우 만달레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뭐 이런 것도 결국은 지나고 나면 그저 하나의 얘깃거리가 된다.



고생 고생하며 만달레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 중이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숙소를 다행히 바로 잡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

사실 뭐 더 둘러보고 할 시간도 체력도 없었기에 그냥 묵기로 했다.

미얀마에서 양곤에 이은 제 2의 도시인 만달레이는 대도시답게 혼잡하긴 했지만 양곤에 비하면 훨씬 깨끗하고 여유로워 보였다만달레이에서 시간을 갖지 못한 게 지금도 많이 아쉽다.


 

방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만달레이에서 영어 교사를 하고 있다는 네덜란드 친구는 여행 중 만달레이가 너무 좋아 그 곳에 눌러 앉아 9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만달레이..그리고 미얀마... 

 


난 여전히 '여행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 라는 질문에 늘 미얀마라고 말한다.

모든 나라가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고 어느 곳 하나 좋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미얀마가 특히 좋은 이유는 몇 안되는 진짜 여행자들을 위한 여행지 중 하나라는 것!

부디 그 순수함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기를.. 

무늬만 여행자인 약쟁이들이나 모든 여행지의 최대의 적인 대규모 단체 여행이 판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길고 길었던 나의 방랑은 끝이 났다.

이제는 현실로 돌아가야할 때..

계획에도 없던 이 즉흥적인 방랑이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여행동안 페이스북에 올린 내 여행 사진들을 보고 지인들은 부럽다며 멋있다며 응원을 해 왔다.

하지만 내겐 다시 살아 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자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외롭고 힘겨웠던 시간..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던 여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고 조금은 더 단단해진 나를 느낄 수 있었다.

행복을 찾겠다며 방콕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방랑은 결국 행복이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이고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되었다.

다음 여행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더 이상 방랑은 아닐 것이다.

훗날 돌아봤을 때 이 젊은 날의 고뇌의 시간들을, 그 방랑을 사랑스러운 추억으로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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