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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벚꽃 명소 아사가야 젠뿌꾸지가와 (阿佐ヶ谷 善福寺川)

2016 일본여행/도쿄

by prana. 2016. 4. 7.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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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이스타항공 프로모션 당시 도쿄행 티켓을 끊어놓았다. 

별 생각없이 '추운건 싫으니 날씨가 좀 풀릴때 쯤'으로 그 중 가격이 가장 저렴한 날을 골라 예매를 해두었는데 생각해보니 마침 딱 벚꽃시즌!!

예전 일본에 살 때 친구들과 모여 즐기던 하나미, 혼자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찾아낸 나의 벚꽃 명소들이 떠오르며 설레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일본여행 계획을 올리자 그동안 멀리 떨어져있어 소원해졌던 일본 각지의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그 중 도쿄에 있는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 중 제일 먼저 하나미를 제안한 건 시드니에서 우연히 알게되었던 이탈리아인 타노!

시드니에서 어쩌다보니 계속 한침대를 쓰며 지냈던 마르타. 그녀의 친구가 어느날 누군가의 송별회가 있다며 놀러오라고 했고 그 날은 타노가 시드니에서 도쿄로 떠나기 전 날이었다. 우린 모두 함께 그날 아침까지 밤새 왁자지껄 신나게 놀았고 일본에서 살다온 내 경험 때문에 타노와는 많은 대화를 나누며 금새 친해졌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만남 이후 페이스북으로 아주 가끔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만나게 된다니! 신기하고 재밌는 인연이다. 

 

우리는 아사가야역에서 만나 다른 친구들이 모여있는 하나미 장소인 젠뿌꾸지가와(善福寺川)로 이동했다.

 

 

친구가 자전거 하나가 더 있다고 해서 빌려타고 함께 강가를 달렸다.

 

 

이 날이 3월 30일. 아직 벚꽃이 만개한 시기는 아니었지만 꽤나 아름다운 꽃길이었다. 아사가야는 내가 오래전 살던 오기쿠보에서 가까운 곳으로 늘 덴샤로 지나다니던 동네지만 한번도 내려서 둘러본 적이 없었는데 친구 말로는 예술가들이 모여사는 아기자기하고 매력적인 동네라고. 평일이고 아직 만개한 시즌이 아니라서 그랬겠지만 인적이 많지 않아 더욱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벚꽃을 조용히 천천히 마음껏 감상하고 싶다면 도쿄에서 이만큼 적당한 장소가 또 있을까. 게다가 벚꽃도 환상적이다. 이 앙증맞은 냇물을 따라 한참을 달려도 끝없이 이어지던 꽃길.

 

 

일본에 3년을 살아도 몰랐는데 이탈리아 친구한테, 그것도 내가 살던 바로 옆동네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소개받다니.. 친구는 어떻게 아사가야를 모를 수 있냐며 도쿄에 살면서 대체 뭘했냐고 장난스럽게 핀잔을 준다. 그러게... 왜 몰랐을까. 하지만 일본엔 워낙 벚꽃 명소가 많다보니 전부 다 둘러보기엔 벚꽃이 피고지는 시기가 터무니 없이 짧은 걸 어떡하냐구~

 

 

타노의 친구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갔을 때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외국인 친구들일 거라고 나도 모르게 예상했는데 왠걸.. 전원 다 일본인. 그것도 2~30명은 되어 보였다. 바를 운영하는 친구가 이 모임의 리더로 그를 중심으로 손님, 친구, 친구의 친구 등등 인간관계가 뻗어가 결국 이런 모임이 되었다고. 제대로 모이는 것은 일요일인데 그때는 백명 이상 모일거라고 한다. 이 날은 일요일 시간이 안되는 사람들만 따로 모인 자리라고. 대체 뭐지 이 사람들ㅎㅎㅎ

 

 

 

그냥 넉살 좋게 끼어서 사람들이 손수 만들어온 음식을 실컷 먹었다. 일본인들은 어쩜 이렇게들 다 요리를 잘하는지... 늘 놀라지만 어김없이 또 한번 놀라고 만다. 이 사람들 대체 정체가 뭘까 궁금하던 찰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한명이 멜로디언을 연주하기 시작하더니 기타, 봉고가 합세하며 즉흥연주를 만들어 냈다. 오~ 멋진 사람들이었어.

(하지만 세번째 곡으로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쯤 경찰 아저씨가 나타나 시끄럽다며 연주를 중단 시켰다ㅋㅋ)

 

 

날씨 좋고 벚꽃 좋고 음악 좋고 음식 좋고 사람들 좋고... 그냥 전부 완벽했던 하루. 이런 하루를 선물해 준 타노에게 감사하고 이런 인연을 만들어낸 자신에게 감사했다.

 

타노는 이 날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어서 우리 둘은 먼저 일어섰다. 그가 가게 준비를 위해 장을 보는 동안 나는 근처의 카페를 찾았다. 일본 특유의 오래된 찻집. 이런 분위기의 카페가 그리웠던 참이었다. 그리고 난 이런 곳에선 꼭 비엔나 커피를 주문하게 된다. 왠지 궁합이 잘맞는 느낌.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ㅎㅎ

 

 

중년의 아저씨가 카페에서 만화책을 보는 건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 살 때는 별로 특별할 것 없던 일상이 여행자의 눈으로 보니 색다르고 재밌는 것 투성이다.

 

 

나를 위해 요리를 해주겠다며 메뉴 선정에 고심하는 타노. 내가 원가 못먹는게 많다보니... 그렇게 고민 끝에 결정한 나를 위한 요리가 이 날의 가게 메뉴가 되었다.

 

3년전 만났을 때 일본어는 아리가또, 스미마생 밖에 모르던 친구가 이제 제법 일본어로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되어 있었다. 5살 때부터 왠지 모르게 일본을 운명으로 느꼈다던데 그래서인지 분위기? 영혼? 뭐 그런게 상당히 동양적인 친구였고 그런 부분 때문에 일본 문화와 언어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화는 되지만 글을 읽고 쓰는건 불가능하기에 오늘의 메뉴는 내가 대신 써주기로~ 원래 글씨를 잘 못쓰지만 나름 노력해봤다.;;

 

 

 

친구가 만들어준 코스 요리! 그의 창작 요리였는데 기대했던 것 보다도 훨씬 더, 굉장히 맛있었다.

 

바에서 노는 동안 왼쪽으로는 인도 출신 회사원 2명, 오른 쪽으로는 일본인 4명 무리가 앉았고 일본인들과는 금새 친해져 한국에 놀러 가겠다, 오면 맛집 안내하겠다 이런 얘기들이 오갔다. 그렇게 여행 얘기를 하다가 인도를 6개월 다녀온 얘기가 나왔고 그걸 들은 인도인들의 질문이 쏟아지며 양쪽으로 대화에 참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용하게 혼자만의 식사를 즐기며 바텐더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세련된 손님을 흉내내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그들에게 난 이미 프렌들리하고 시끌벅적한 대화를 즐기는 리액션 좋은 대화상대로 분류되었고 나는 밤 늦게까지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한편, 이 좁은 공간에서 흡연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충격. 8년만에 찾은 일본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카페든 레스토랑이든 왠만한데는 다 흡연이 가능... 흡연자들에겐 천국 같은 나라다. 나는 생명이 팍팍 단축되는 느낌ㅠㅠ

어쨌거나 저쨌거나 피곤하긴 했지만 우연한 인연 덕분에 아주 알차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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