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뉴델리] 도착하자마자 인도에 당하다..
2008.10.1
새벽부터 리무진 버스를 타고 온데다 아침부터 가방이랑 씨름을 했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곧 델리에 착륙한다는 기내방송을 들어도 와닿질 않는다...
이상하네.. 그렇게 꿈꿔왔던 순간인데...
하지만.. 어리둥절하던 것도 잠시...
인터넷 까페에서 만나 출발을 함께하게 된 친구의
"인도야! 우린 지금 인도에 있다구!"라는 격앙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제야 내가 인도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진하게 다가와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잠시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허덕이던 나는 짐을 찾아 공항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다시 덜컥 겁이 났다.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예전부터 인도의 치안에 대해 워낙 많이 들었던 터라 나는 공항에서 밤을 세우고 이동하자고 했지만
친구는 너무 많이 피곤한 상태인데 이대로 잠도 제대로 못자고
다음날 암리차르행 기차를 타는 것은 절대적으로 무리라며 나를 설득했다.
인도에 두번째 온 그 친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프리페이드 택시라면 믿을 수 있겠지..?
환전을 하고 프리페이드 택시 요금을 지불한 후 받은 종이를 들고 공항을 나섰다.
한손에 종이를 든채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어디로 가야할지를 찾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초짜티를 팍팍 냈던 거 같다.
누군가가 프리페이드를 찾느냐며 아주 자연스럽게 내 종이를 낚아챘다.
자기를 따라오라며 종이는 돌려주지 않았다.
찝찝한 기분이었지만 종이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엉거주춤 그를 따라가자
택시들이 서있고 운전수로 보이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남자가 머라머라 얘기를 하더니 한남자에게 종이를 건내준다.
우리한테는 그 사람 차를 타면 된다고...
아.. 뭔가 찝찝한 이 기분... 어떡해야지?
생각할 새도 없이 얼떨결에 짐이 이미 그 차 트렁크에 실렸다.
얼떨결에 우리 둘도 이미 차에 타있다.
차는 이미 주행중이다.
우리...괘...괜찮은 거겠지??
어느나라 사람이냐, 너네나라 화폐는 머냐..
머 이런 얘기들이 오가며 긴장감이 좀 풀렸었다.
그순간...
"근데 너네 지금 어디가?"
헉...
"아까 말했잖아. 빠하르간지라고!!!"
"아! 그랬지? 걱정마!ㅎㅎ"
이건 대체 머하는 분위기?
별별 생각이 다 들며 다시 겁이 나기 시작했다.
큰길을 달리던 차가 갑자기 골목골목으로 가더니
흙길에 양쪽으로 허름한 건물이 즐비한, 가로등도 없는 곳에서 멈추었다.
"여기가 빠하르간지야! 근데 여기가 어제도 폭탄이 터져서
위험한 곳이라 현재 외국인은 못돌아다녀
내가 호텔까지 데려다줄께. 어느호텔이야?"
우리가 알아서 찾아가겠다며 내리겠다고 하자
호텔을 알려달라고 혹시 안 정한거면 자기가 알아봐주겠다면서
이 시간에 내려서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다고 만류한다.
우리는 생각해놨던 호텔 이름을 댔다.
그러자 본인이 길을 모르니 물어보자며 이번엔 어느 여행사 비슷한 곳으로 데려갔다.
거기서 호텔로 직접 전화를 걸어 물어봤는데 방이 없다고 했다.
알아서 다른 숙소를 찾을테니깐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달라고 요구하자
그럼 일단 타라고 한다. 너네가 말한 곳은 더 가야된다고...
"머야~ 여기가 빠하르간지 맞다며!!!"
"그래 여기도 빠하르간지 거기도 빠하르간지...델리에 빠하르간지는 아주 많거든"
내 이럴줄 알았어... "다 필요없으니 그냥 뉴델리역에 내려줘!"
아주 한참을 달렸다.
빠하르간지라던 그곳은 실은 전혀 상관없는 곳이었고
그 밤중에 거기서 내렸더라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는 위험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위험하다는 말에선 진심이 느껴졌었어..)
뉴델리역에 도착했지만 차를 세우지 않은 채
빠하르간지에 대규모 호텔단지가 들어서기 때문에 옛날 호텔들은 다 없어졌다며
근방의 공사중인 곳들을 빙빙 돌다가 계속 비싼 호텔로 데려가려고 했다.
차에 탄지 2시간이 넘었는데도 우리가 안넘어가자
돌연 차를 멈추더니 그가 간절하게 말했다.
"너희들.. 제발 내려줘~ㅜ.ㅜ"
짐까지 후딱 꺼내 내려놓더니 후다닥 사라졌다.
근데 대체 여기가 어디냐고요~~ㅜ.ㅜ
새벽 1시 !!
대로변이지만 가로등도 거의 없는데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좁고 어두컴컴한 골목 안에선 무서워보이는 남자들이 모여들어 '쟤네 대체 머냐'하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냥 이게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길을 모르니 어쩔수 없이 지나가던 오토릭샤를 잡으려는데
100루피, 150루피를 불러댄다. 이 사기꾼들~!!!!!!!!!!
30루피에 합의를하고 출발했는데...
뭐야... 바로 코앞이었잖아...ㅜ.ㅜ
코너만 돌면 되는 것을...
새벽 1시의 빠하르간지는 '여행자의 거리'가 아니었다.
불량청년으로 보이는 이들이 곳곳에 모여있었고 우리를 보자 눈을 희번득였다.
잔뜩 겁먹고 있는데 아까 방이 없다던 호텔의 간판이 보이자 일단 혼자가서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방이 있으며 그런 전화는 받은 적이 없단다.
분명 번호를 제대로 눌렀었는데...
그 전화는 혹시 한군데로만 걸리는 전화?
방을 잡고 짐을 가지러 가보니 그 오토릭샤 주위를
열댓명의 남자들이 둘러싸고 내리는 문 쪽엔 리어카 같은걸 받쳐 막아놓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리어카를 밀고 친구를 잡아 끌었다.
나는 비록 속았다고 하더라도 오늘 고생한 걸 생각하면
무사히 도착한게 고마워 돈을 좀 더 주려 했다.
그런데 자기가 호텔을 찾아줬으니 배가 넘는 70루피를 달라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간판이 보여 내려달라고 한건데!!!
이들의 능청스러움과 뻔뻔함에 기가찼다.
그런데 주변의 남자들도 다 인상을 쓰며 한마디씩 거든다. 너네가 70루피 줘야하는거야!
이건 거의 삥뜯는 분위기....
순간 열이받은 나는 40루피를 그의 손에 던지듯 쥐어주며
"난 너한테 고맙다고 하려고 했다고! 이게 내가 줄수 있는 전부니까 버리든 갖든 니 맘대로해!!!"
오늘 당한 억울함을 다 토해내듯 소리를 질렀다.
뒷감당은 어쩌려고 그랬는지...ㅡㅡ;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너무도 긴 하루였다.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창문도 다 막힌 작은방에
맨발로는 절대 딛을 수 없는 욕실에, 엉덩이를 절대 댈 수 없는 더러운 변기였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참을만 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속아서 힘든 하루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돈을 빼앗긴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무사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운이 좋은 하루라 생각됐다.
그러자 이번엔 두시간동안 우릴 싣고 다니다 돈도 못건지고 시간만 버린 택시 기사와
내가 소리를 질렀던 오토릭샤꾼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좀더 똑똑한 여행자가 되어야겠다 다짐했다.
그럼 그들이 나에대한 헛된 기대와 헛된 노력을 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겠지?
그날 밤...가이드북 하나 없이 무작정 갔던 나는 친구가 들고온 가이드북을 보면서
우리가 그 첫 주의사항에 있는 사례 그대로 당했다는 걸 알고 기가막혀 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몇년이 지났는데도 그들의 사기 패턴이 톨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는 점도 놀라웠다.
역시 인도ㅎㅎㅎ
▶▶ 첫날 숙소 디센트 1박 300루피. 깔끔하다는 백배 말만 믿고 갔는데.. 방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으나 욕실이 너무 더럽고 물도 제대로 안나왔다. 결의에 가득 찬 첫날이었기에 당시엔 참을만 했지만
돌이켜보면 4개월간의 인도 여행중 최악의 숙소! 직원들이 친절한 편이라 나쁘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시 묵고 싶진 않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