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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뉴질랜드 로드트립] 핑크빛 노을의 평화로운 그곳, 오카리토 라군(Okarito La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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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섬은 서쪽으로 큰 산맥이 형성되어 있어서 동쪽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개발이 잘 안되있기 때문에 여행경로를 정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빙하투어를 하기 위해 폭스 글래시어나 프란츠 조셉 글래시어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웨스트코스트를 따라 쭉 달려야만 한다. 우리처럼 시간적 여유가 좀 있는 편이면 괜찮지만 짧은 일정으로 남섬을 둘러봐야한다면 가장 대표 관광지인 데카포 호수와 마운틴 쿡, 퀸스타운, 밀포드 사운드 등을 위해 빙하투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빙하투어 하나를 위해 이동하기엔 너무 빙 돌아가야하다보니 가성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빙하투어 하나만을 위해 최소 2박 3일 정도는 할애해야 하는데 무조건 이동만 하면 시간을 버리는거 같아 아깝고, 제대로 보면서 가자니 웨스트코스트에는 매력적인 곳이 너무 많다. 우리도 처음에는 웨스트코스트는 무조건 쭉 달리기만 할 예정이었지만 중간중간 들렀던 관광안내소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보니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곳들이 너무 많아서 자꾸만 일정이 지체되었다.

 

 

그렇게 프란츠 조셉 글래시어를 목전에 두고 마지막으로 발길을 붙잡았던 오카리토 라군. 바로 직전까지도 고민고민하다 결국 우린 이곳에 하루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냥 지나쳤다면 프란츠 조셉 글래시어 빙하를 감상하는 간단한 트레킹을 한 후 당일에 폭스 글래시어까지 갈 수 있었지만 이로서 다시 하루씩 미뤄진 것. 그래봤자 웨스트코스트 쪽에서 총 2박이 늘어난 것 뿐인데 늘 편도 항공권으로 끝을 정하지 않고 여행을 다니다가 리턴편이 정해져있는 한정된 기간의 여행을 하다보니 자꾸만 마음이 바빠졌다.  

 

 

안내소에서 봤던 멋진 사진에 반신반의하며 찾아갔던 오카리토 라군이었지만 우린 첫눈에 이곳에 반해버렸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무엇보다 좋았던 건 우리 말고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 이 아름다운 풍경을 오로지 우리끼리만 감상할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 아닌가. 

 

 

호수 주변이면 어김없이 달려드는 샌드 플라이가 방해이긴 했지만 그래도 심하진 않았다. 우린 그저 하루종일 조용히 라군 주변을 거닐며 풍경을 감상하고 각자 사색을 즐겼다. 여행이 이제 중반을 향하다보니 여행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각자의 고민거리가 한가득이라 서로 대화도 많이 줄었다.ㅎㅎ  

 

 

인공이아닌 자연 그대로의 라군은 처음이라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는데 육안으로는 호수와 동일. 바다가 막혀 격리된 부분이 라군이니 맛을 봐야 차이를 알 수 있겠지? 안내소의 많은 추천 문구들에도 불구하고 찾는 이들이 별로 없는 듯 정말 고요했다. 심지어 인포메이션 센터는 문을 닫고 철수한지 오래인 듯. 그래도 그 흔적인 라군 위에 지어진 낡은 오두막이 운치를 더한다.

 

 

오카리토 라군을 들르는 바람에 바로 프란츠 조셉 글래시어로 이동을 하면 시간이 어중간해 그쪽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오후시간을 버려야 해서 차라리 이 부근 트레킹 코스들이 좋다고 하니 트레킹을 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라군의 분위기에 매료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라군에서 오수 시간 전체를 보내기로 했다. 늘 완벽한 스케줄에 짜투리 시간도 꽉꽉 채워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던 친구는 어느새 무계획에 변덕스럽고 가끔은 게으른 오후를 보내는 내 여행스타일에 물들어 있었다. ㅎㅎ

 

 

오카리토 라군은 사진 촬영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환상적인 풍경, 매력적인 소품들, 아무도 없는 공간... 사진작가들이 좋아할만한 곳.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며 늘어지게 기분좋은 낮잠을 자고난 후. 라군 바로 옆 바다로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자 반대편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같은 장소에서 좌우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 또한 이 곳의 매력. 

 

 

 

 

 

파스텔빛 감성적인 노을과 웅장한 자연, 그리고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젖은 흙냄새, 오래된 통나무 냄새, 물이끼, 수면이 일렁일때마다 조그맣게 찰싹이는 소리. 모든게 마음을 잔잔하게 해준다. 있지도 않은 굴뚝 냄새까지 섞여 있는 듯 했다. 어렸을 때부터 시골냄새가 좋았다. 시골의 자연 냄새에 더해 시골집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밥짓는 냄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냄새. 그 순간 만큼은 아무 걱정도, 두려움도, 슬픔도..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끼어들지 않는 완벽하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 혼자만의 우주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곳, 이 날, 정말 오랜만에 그 감정을 다시 만났다.   

 

바닷가 쪽에 캠프사이트가 있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설도 깔끔하고 가격도 저렴한 괜찮은 캠핑장이었지만 다음 일정을 맞추려면 이제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 후에야 우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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