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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뉴질랜드 로드트립] 누군가와 함께 여행한다는 것, 그리고 와나카호수 자전거 하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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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나카 호수에 도착한 날. 함께 여행 중이던 친구와 크게 다퉜다. 무엇이 화근이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게 무엇이건 중요하진 않았다. 그냥 긴 여행동안 쌓이고 쌓였던 갈등이 무언가를 핑계삼아 폭발한 것 뿐. 역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짧은 동행은 괜찮지만 오랜 여행을 함께 하다보면 꼭 이런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감정을 폭발시켰던 순간, 인도 여행 때 장기간 함께 했던 친구와 카트만두에서 충돌했던 기억이 오버랩 되었다. 맞지 않는 점들을 맞추려 참고 또 참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결국 '넌 대체 왜그러는데?'로 시작했던 다툼. 그 다툼 이후 우리는 오해를 풀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더욱 끈끈해졌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더 큰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서로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얘기하려다가도 이미 감정이 뒤틀린 상태에서 영어를 하기 위해 머리를 써야 하는 게 귀찮고 짜증스러워 '됐어, 그냥 신경쓰지마'로 매번 대화는 끝이 났고 그러다 보니 감정은 계속해서 쌓이고 쌓여 갔다. 그리고 이 곳에서 터져 버린 것. 어른이 된 후에 그렇게 감정을 터뜨려 본 적이 없었다. 늘 나는 차분한 사람이었고 참는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스스로 너무도 답답할 만큼.

 

뉴질랜드의 작고 평화로운 마을 와나카에서, 예쁜 그 길거리에서 나는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건 친구에 대한 쌓인 감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랜 연인과 헤어진 후에도 참았던 감정이, 필리핀-호주-뉴질랜드로 계속된 여행 중에 만나고 헤어진 인연들에 대한 그리움이, 뉴질랜드 여행이 끝난 후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할 지 알 수 없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그렇게 감추고 속으로 삭혀 왔던 수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제발 좀 알아 달라고, 사실 너무 힘들고 무섭다고..

 

친구를 앞으로 어떻게 보나 싶어 당장 혼자 짐을 챙겨 달아나 버리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오히려 그 날 이후 우린 서로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힘들면 참지 않고 서로에게 기대면서 그렇게 우린 끝까지 여행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정말 잘 알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다면 함께 여행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되도록 오래... 서로의 인내심의 한계까지, 감정의 밑바닥까지 경험하고 나면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미련없이 깨끗하게 끝낼 수 있거나 진정한 소울 메이트가 되거나!

 

 

그렇게 한바탕 치열한 전투를 치루고 난 다음날 아침, 민망하리만큼 화창한 날씨가 우리를 반겼다. 어색어색한 분위기도 잠시, 우린 함께 와나카 호수 자전거 하이킹을 가기로 했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비워내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 속엔 고마움과 미안함이 차오르고 있었다.

 

 

작고 예쁜 와나카 마을은 마치 드라마 속 세트장 같은 느낌이었다. 다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한가지 아쉬운 건 도서관에 무료 와이파이 제공이 없다는 것.. 간만에 인터넷 좀 해보나 했는데.. 여행하면서 한국의 인터넷의 위대함에 대해 늘 생각하게 된다.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무료 와이파이를 쓰기도 어려울 뿐더러 카페에서 음료를 시키고 이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도 다들 제한 시간이 있다. 연결이 자꾸 끊기는 것도 일반적인 일.. 

 

당시 워홀을 떠나기전 잠깐 일했던 인터넷 여행신문사에서 뉴질랜드 여행 기고를 요청해 왔고 여행 중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한번씩 업로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여건이 좋지 못해서 하나 올리는데도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여행에 지장을 주고 친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있었기에 막판에는 거의 포기^^;

 

 

 

마을을 둘러본 후 커다란 와나카 호수를 왼편에 끼고 하이킹을 나섰다. 호수를 한바퀴를 다 도는 것은 무리였기에 호수길을 따라 갈 수 있는 만큼 갔다가 차도를 타고 되돌아오기로 했다.

 

 

이렇게 큰 호수가 이렇게 맑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혼자 살기는 너무 외로울 거 같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눌러앉아도 좋을거 같은 그림같은 마을.

 

 

 

늦가을로 접어든 와나카 호수 주변은 온통 노란잎으로 물들어 있었다. 파란 하늘과 노란잎들, 맑은 호수와 공기. 모든게 완벽했던 하루.

 

 

 

 

 

 

와나카 호수길을 따라 안쪽에 형성된 작은 마을. 말년을 보내기 좋은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예쁜 집들은 대문을 나서면 눈앞에 산과 호수가 펼쳐져 있고 집에서 의자 하나 들고 나가 호숫가에 앉아 책을 읽거나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면 친구가 그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 인사를 건네고.. 둘이 되고 셋이 되어 담소를 나누는 잔잔한 일상. 파란만장해서 너무 힘들고 지치는 이 인생, 그 끄트머리에는 이런 평화로움이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 내 인생의 마지막 모습도 부디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답기를.. 

 

 

 

 

 

 

하루종일 적당한 운동과 함께 멋진 풍경을 눈속에 마음속에 가득 담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는 것. 여행 중에만 가능한 이 일상을 앞으로의 고민으로 채우지 말고 지금 당장의 행복에 집중하며 감사함으로 채우자고 오늘의 지는 해를 바라보며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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