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미얀마] 깊은 불심으로 고통을 이겨낸 미얀마, 그 배움의 첫걸음 명상센터 입소

본문

반응형

꼬창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태국으로 돌아와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한국으로 곧장 들어갈지 미얀마를 갈지 몇일간 고민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결심하게 된 미얀마행!


먼저 내가 미얀마를 동경하게 된 계기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일본 워킹 홀리데이 1년을 마치고 어학교에 진학해 일하기 시작한 어느 소바요리점

그 곳엔 미얀마에서 망명 온 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아카사카에 있는 큰 쇼핑센터 꼭대기 층에 있는 음식점이었는데 우리 가게 뿐 아니라 그 건물에는 유독 많은 미얀마인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친해진 그들을 통해 이전엔  알지 못했던 미얀마란 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접하게 된다.


당시 미얀마는 오랜 군부 독재정치로 제한된 자유와 높은 물가, 부당한 급여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북한에 비유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도망 온 사람들, 민주화 운동을 하다 지명 수배되어 망명 온 사람들이 바로 이 곳에서 일하는 미얀마 사람들이었다. 

 

불법체류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같은 군부 독재를 겪고 이겨내고 현재를 이룩한 한국을 동질감과 부러움의 대상으로 각별히 생각하던 그들...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특별히 반가워 하고 챙기던 그들에게 그때까지 미얀마란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전혀 관심도 없었던 내가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하나같이 평탄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들...

한명은 미얀마에서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다가 지명 수배가 되면서 부인과 함께 태국을 통해 일본으로 망명을 왔다. 일본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 가면서도 민주화 투쟁을 위해 민주화 관련 신문을 발행하는 등 열정적인 활동을 이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들이 닥친 출입국 관리소 직원에 의해 만삭의 부인이 잡혀 가게 된다. 불법 체류자로 걸리면 수용소 같은 곳에서 갇혀 지내며 조사를 받은 후 결국엔 고국으로 강제 추방을 당한다. 하지만 이들의 사정을 알게 된 일본 정부에서는 망명 신청을 권했다.


이 사람 같은 경우엔 민주화 운동으로 지명 수배돼 고국으로 돌아가면 총살 당하는 상황이었기에 국제 망명 신청을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합법적으로 혜택을 받으며 원하는 나라에서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평생 사랑하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하는 신세가 될 거라며 그때까지 망명 신청을 하지 않고 버텨온 것...

한동안 고민하며 괴로워하던 그는 만삭의 부인이 추방 당하게 둘 수는 없으니 결국 망명 신청에 응하게 된다.

 

그리고 15년을 일본에서 일하다 미얀마로 돌아간다는 친했던 미얀마 언니는 이제 가족이 너무 그리워서 못참겠다고.. 일본에서 더 이상 상처받으며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그 언니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미얀마 정부에 몇천만원이나 되는 돈을 지불해야했다. 그 오랜 시간동안 타국에서 고생 고생하며 모았을 피 같은 돈을..

처음으로 내가 한국인임을 감사한 순간이었다.

 

또 한명의 미얀마 언니는 출입국 관리소에 잡혀 갔다가 연애를 해 왔던 일본인이 결혼을 할테니 풀어달라며 정부에 요청을 했고 위장 결혼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몇 달간의 피말리는 조사, 심리 기간을 거쳐 극적으로 풀려 났다.


영화에서나 보던 상황들이 내가 있던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 같으면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그들은 깊은 불심으로 그런 상황들을 이겨 냈다.


내가 겪는 지금의 고통들은 전생의 죄로부터 오는 것이니 내가 감당 해내야 할 것들이며 내가 이번 생에서 어떻게 살아 내느냐에 따라 내생이 달라진다.


이것이 그들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불교는 종교 이상이다.

삶의 신념이자 진리인 것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윤회 사상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의한 '체념'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음 생을 위해 열심히 이겨 내겠다는 다짐이자 희망인 것이다.

당시 내게 이 미얀마 인들은 모두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현자들로 보였다.

 

그렇게 난 미얀마란 나라를 동경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년 뒤 일본에서 취업을 한 나는 그렇게 동경해 왔던 나라에 가기 위해 비자와 비행기표, 그리고 하룻밤의 숙소를 예약했다. 

회사에는 보름간의 긴 휴가를 낸 상태였다. 

내 생애 가장 가슴 뛰는 여행 준비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출발일 몇일 전, 2007년의 양곤에서 민주화 운동이 크게 일어났고 내가 예약했던 파라곤 호텔은 그 시위의 중심에 있어 호텔 창문이 모두 깨지는 등 손님을 받을 상황이 아니라며 캔슬 통보 전화를 걸어왔다.

그래도 여행 경보 2단계.. ‘여행자제단계였기에 출입국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서 무조건 가야겠다 마음 먹었다.


그러나 출발 바로 전날..

일본인 기자가 총에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

내가 출발하는 당일 일본에서는 3단계인 여행 제한으로 격상된다.


현지에 있던 여행자들 얘기론 위험한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와봤자 공항에 갇혀 있을 거라고..

결국 난 여행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 당일날 항공사에서 전액 환불해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 후 항상 응어리로 남아있던 미얀마였다.

그 곳에 드디어 갈 수 있게 된다니 어찌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있겠나...


방콕에 머무르며 미얀마행을 준비했다

수라삭역 근처에 있는 미얀마 대사관에서 3 4일 걸리는 비자를 신청하고 마침 타이항공에서 프로모션을 하고 있어 저렴한 가격의 티켓을 손에 넣었다. 오랜만의 설레임과 함께 혹시나 여기서마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안고 미얀마 공항에 도착!!



미얀마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삼성!

이제 막 군부정치로부터 벗어난 미얀마는 발전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 선두에 서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일단 이번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인 ''에 대한 성찰과 '행복'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명상센터로 목적지를 정했다미얀마에서 가장 유명한 마하시 명상센터로 가고자 했지만 따로 예약 없이 찾아간 그 곳은 이미 빈자리가 없다는 대답이었다대신 그들은 찬매 옉다라는 다른 명상센터를 추천해 주었다공항에서 마하시 명상센터까지는 7만 짯을 지불했다.

 

미얀마를 3주간 여행하며 느낀 것이지만 바가지사기가 전혀 없었다다들 정직했고 어느 정도는 흥정도 가능하지만 외국인 여행자라고 너무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불러대는 다른 나라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 역시 미얀마야.. 오길 잘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 없이 여행을 했기 때문에 집에 연락을 하기 위해 찾아간 인터넷 까페그런데 정전이 잦은 양곤이라 이날도 거의 하루종일 전기가 끊겨 인터넷 까페는 무용지물...;;; 다행히 주변에 자가 발전기를 갖춘 약간 고급스러운 까페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찬매 옉다 명상센터도 사람이 거의 꽉 차 있었는데 다행히 마침 오전에 한 명이 나가서 자리를 정돈 중이라고 했다이런 비수기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나 의아했는데 군부 정치에서 벗어나며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고 호기심과 함께 안전하다는 생각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 같다고 했다.

나를 받아주는 조건은 명상을 최소 10일이상 할 것과 그 기간 동안 외출 금지정해진 시간 이외에는 절대적으로 금식할 것철저하게 정해진 규율에 따라 생활할 것.

명상에 집중하고 딴 생각 않도록 카메라노트북전화기 등 모든 기기 반납.

생각보다 너무 엄격한 것 같아 겁이 났지만 이왕 마음 먹은거 도전해 보기로 했다큰스님과 면담 후 허락이 떨어지자 입소 절차가 시작됐고 그렇게 나의 자발적인 수감생활(?)이 시작되었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