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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찬몌 예익다 명상센터 위파사나 명상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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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을 약속하고 들어간 명상센터 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일단 시설이 무척 열악했는데...(그나마도 외국인 숙소라 상황은 훨씬 나은편이라고)

늘 냉수로 샤워를 해야 했고 화장실은 깨끗하긴 했으나 냄새가 심했다.

거기에 화장실 바로 옆 방에 배정 되어 매일 암모니아 냄새에 시달렸다.ㅠㅠ



그리고 더 큰 문제였던 내 몸상태...

꼬창에서 비를 맞고 청승 떨며 돌아다닌 탓에 감기가 걸렸는데 그게 낫질 않고 점점 심해지더니 하루종일 기침을 멈출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

특히 밤에 심했는데 이놈의 기침 때문에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눕기만 하면 폐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면서 기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잠을 설칠 것이 걱정돼 잠자기를 포기하고 매일 밤 벽을 바라보고 앉아 입을 틀어막고 기침을 달래며 밤을 새야 했다.ㅠㅠ

 


수련생활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 4시에 일어나 간단히 세수를 하고 옷을 차려 입고 4시 반에 종이 울리면 식당으로 향한다.

위파사나 명상 수련자들은 가르침대로 모든 동작을 천천히..

동작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깨우치기 위해 아주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숙소에서 식당까지 50미터정도 밖에 안되는 거리를 이동하는데 10분 이상은 걸리는 듯 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큰스님 쪽을 향해 또 천천히 세 번 절을 올리고 자리에 바로 앉아 그제서야 비로소 식사를 시작한다.



정말 동작 하나하나에서 기품이 느껴지던 어느 비구니.

명상 수련 시에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는 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명상 센터 내에서 가장 좋아하던.. 식사!!

 


채식과 육식으로 테이블이 나뉘는데 나는 채식 요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한 상 가득 다양한 미얀마 요리가 나오며 맛있는 커피나 티그리고 빵이나 쿠키 또는 아이스크림이 후식으로 나온다.

명상 센터에서 이렇게 훌륭한 식사가 나올 거라고는 예상도 못했다.ㅠㅠ 

명상이 힘들어서 빨리 떠나고 싶어도 이 밥상이 내 발길을 붙잡곤 했다.ㅎㅎ



5시부터 5시 반까지 청소를 하고 그 이후로는 하루 종일 명상 수련을 한다.

걸으면서 하는 명상과 앉아서 하는 명상 두 가지를 번갈아 가며 반복한다.

이걸 점심 시간 한 시간을 빼고 저녁은 주스 한잔으로 대신한 채(5시 이후로는 금식..다이어트 하기에 좋은 곳;;;) 오후 8시까지 계속한다.


처음엔 뭔지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 했다. 

걷기는 그나마 나았지만 앉아서 하는 명상은 정말 곤욕이었다. 

어떻게들 저렇게 꼼짝도 않고 한자리에 앉아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몇 일이 흐르자 뭔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동작 하나 하나에 대한 내 몸의 반응이 느껴졌다.

날리는 머리카락 한 올늘어났다 줄어드는 힘줄 하나몸을 스치는 바람 한 점온몸을 순환하는 저릿한 느낌의 기의 흐름까지...

그 느낌들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날 괴롭히던 수많은 잡념들이 사라져 있었다.


앉아서 하는 명상은 배의 움직임에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자칫 호흡에 집중하기가 쉬운데 이건 다른 종류의 명상이라고 한다. 

이 명상 센터의 스승인 참몌 예익다 스님의 설법에 따르면 호흡에 집중하는 수련법은 인간이 가진 육감 또는 초능력을 깨우는 수련법이라 한다. 

이 수련을 계속하면 예를 들어 독심술이나 귀신들을 본다거나 괴력이 생긴다거나 그런것..


하지만 위파사나 명상에서의 목적지인 깨달음모든 인간으로서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경지에 이를 수는 없다고...

... 평생이 걸려도 그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 힘든데 그럴 바엔 초능력이라도 키워 재밌게 살아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ㅎㅎㅎ


앉아서 하는 명상은 더움 집중력을 높여 주었다. 

물론 처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눈을 감고 앉아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잡생각이 몰려들며 내가 방금 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았다.

 

배에 집중하며 생각을 관찰하라.


드는 생각들을 무시하려 애쓰지 말고 그대로 관찰하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하나 하나 관찰하며 잡생각과 진짜 생각을 구별해 낸다.

쉽게 말하면 진짜 나를 찾는 과정...

너무 많은 잡생각들로 불안과 혼란에 휩싸이며 어떤게 진짜 내가 원하는 건지 모르고 살아가는 게 보통 사람들이다.

그 안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걸 찾아가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게 명상을 통하지 않고도 가능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역시 명상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명상의 궁극적인 목적인 깨달음이란 물론 그 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이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그 정도만 이루어도 가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속에서 발견한 건 정말 의외의 것이었는데.. 

바로 글쓰기에 대한 나의 욕구! 

명상 외엔 모든 것이 금지된 센터 생활에서 내게 제한된 모든 자유 중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것은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 내던 키보드의 두드림이었다.

딱히 글재주가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기에 글쓰기에 대한 이런 강한 욕구는 정말 의외일 수 밖에 없었지만 어찌됐건 늘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 중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의문이었는데 그 답을 드디어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도움이 되었던 건 마음의 안정... 

그 동안 완전히 끊지 못한 인간관계 때문에 마음이 너무 많이 힘들었는데 이 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두달여를 힘들어 해도 못했는데 단 몇일만에 극적인 반전을 맞은 것이었다. 

사람을 소유하려는 마음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집착과 미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명상센터에 들어오면서 내가 원했던 것들을 어느 정도 이뤘고 멎지 않는 기침 때문에 집중도 잘 안되고 더이상의 수련은 남들에게 방해만 될 뿐이라 판단하여 일주일 만에 수련을 중단키로 했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이제야 진짜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마지막날 카메라를 회수한 후 허락을 맞고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수련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잘하던 베트남 스님. 

(서양 여자도 있었는데 내가 오고선 얼마 후 나가서 말할 기회가 없었다.ㅠㅠ) 

기침 때문에 고생한다고 안쓰러워 하시며 약도 챙겨 주시고 기침 때문에 잠을 못자서 피곤해 아침 먹으러 못간 날은 음식을 싸다 주시곤 했다. 

너무 고마운 분.. 



외국인의 수련을 도와 주시는 스님(장난끼 많고 유쾌해서 유일하게 편한 스님이셨던..)과 내 룸메이트 아주머니.



이분도 베트남 분이라 베트남 스님과 친하셔서 같이 날 챙겨 주시곤 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데도 늘 챙겨 주시던 고마운 분. 

(언어가 달라서가 아니라 원래 언어 장애가 있으신 분인 것 같았다.) 

내가 떠나는 날 꼭 끌어안아 주시며 토닥토닥 해주시는데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울컥했다. 

여기서 몇달을 지내신다고 했는데... 부디 건강하시고 원하시는 걸 모두 이루시기를...


명상 센터 문을 나서는 순간 들어오던 날과는 전혀 다른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죽어 있는 듯 무감각했던 나에서 삶의 열정으로 무장한 원래의 나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 준 곳...

 

불교 명상인 만큼 불교적인 색채가 극명한 명상법이지만 불교에 대한 적개심만 없다면 다른 어떤 명상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명상법이라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경험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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