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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깐야꾸마리-트리밴드럼-코발람] 인도 최고의 해변 휴양지 코발람에서 보낸 마지막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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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라이에서 밤 9시쯤 여행사에서 안내한 미니버스에 탑승했다. 버스 가운데의 통로는 온통 짐들로 가득 차 사람이 오갈 수 조차 없었고 좌석 또한 너무 작고 불편해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불한 금액을 생각하면 반 사기나 마찬가지다. 인도인들 승객 사이에 유일한 외국인이니 바가지를 쓴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인도인들도 마찬가지였던 듯 마지막에 탄 사람은 결국 나중에 폭발해 운전기사 측과 싸움이 붙기도 했다. 알고보니 화를 냈던 승객은 우리보다도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한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대화들이 거의 영어로 오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기해서 옆자리 아저씨에게 이유를 물었다. 모두 인도인들인데 왜 영어로 대화를 하나요? 아저씨는 인도는 굉장히 큰 나라이고 각 지역마다 쓰는 언어가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웨스트 벵갈은 벵갈어, 타밀나두는 타밀어, 델리 쪽은 힌디어 등... 그래서 같은 인도 사람이라도 다른 지역 사람들끼리 얘기를 하려면 영어를 써야 통한다고 한다. 그제서야 인도의 공용어가 영어라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버스는 예상보다 일찍 깐야꾸마리에 도착했다. 인도 여행 중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안거지만 우리 버스는 사실 단체투어의 버스였고 버스에 남는 자리를 우리같은 개별 여행객들에게 비싸게 받고 판 것이었다. 투어로 온 사람들은 숙소가 정해져 있어 그 곳에서 쉬면 그만이었지만 깜깜한 새벽 3시에 버스에서 내려 갈 곳 없는 우리는 그저 난감한 상황.

 

불켜진 숙소들을 돌아다녀 봤지만 빈 방은 없었다. 폰디체리에서 마두라이를 거쳐 깐야꾸마리까지 3일째 세수 한 번 못한 꼬질꼬질한 상태. 화장실도 급했다. 꾸마리 암만 사원 근처에 유료 화장실과 샤워장이 있었는데 우리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는지 그 새벽에도 많은 인도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세수만 간단히 하고 근처 가게에서 달달한 짜이와 비스켓으로 주린 배를 달랬다.

 

깐야꾸마리는 말하자면 인도의 새해 일출 명소다. 그런 곳에서 연말에 그것도 당일 숙소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렇다고 몇시간을 기다려 일출을 보고 당일 관광을 한 후에 이동하기엔 몸이 너무 피곤한 상태였다. 결국 다 포기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에서도 한참을 기다려 트리밴드럼까지 가는 첫 차를 탈 수 있었다.

 

트리밴드럼에서도 고생은 계속됐다. 빈 방을 찾지 못해 길에서 만난 오토릭샤 아저씨 말대로 코발람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밤은 버스에서 보내고 낮엔 하루종일 걸어다니며 몇일을 보내다보니 지칠대로 지쳐 이것저것 따질 기운도 없어 그냥 릭샤꾼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저씨는 직접 숙소를 알아봐주고 짐까지 날라 주었다. 물론 댓가를 바라고 보이는 친절이었지만 그때만큼은 꼭 필요한 도움이었기에 그냥 고마웠다.

 

코발람에서 첫날 묵었던 숙소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보라색 건물의  멋진 정원과 깨끗한 시설, 수영장까지 갖춘 고급스러운 숙소였다. (하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다음날 해변가 저렴한 다른 숙소로 옮겨야 했다.)

 

 

짐을 풀고 실컷 자고 난 후에야 드디어 코발람의 해변을 보러 나갔다. 골목을 빠져나가 맨 처음 코발람의 해변이 눈에 들어왔을 때 그 감동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눈부시게 빛나던 태양, 반짝이던 모래, 푸른 바다와 초승달 모양으로 밀려들던 하얀 파도... 뿌리나 마말라뿌람에서의 해변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물빛은 또 어찌나 맑고 푸른지... 당시엔 이런 남국의 해변 휴양지 자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놀랍도록 아름답다 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머문 해변은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라이트 하우스 해변이고 바위섬을 기준으로 그 너머는 현지인들이 모여드는 하와해변이다. 바로 옆이지만 양쪽은 분명하게 다른 세상이다. 라이트 하우스 해변은 유럽의 해변가인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로 거의 90%가 서양인들.. 여행객 중 한국인은 물론이고 일본인 조차도 만날 수가 없었다. 해변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썬텐을 하거나 서핑을 즐기는 모습반대편의 인도인들에게는 신기한 볼거리임에 틀림 없을 터.. 그 모습을 구경나온 인도인들을 또 구경하는 나..ㅎㅎ

 

 

미리 한국에서 수영복도 준비해 왔건만 마말라뿌람에서 입은 상처가 아직도 낫지 않아 바닷물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덕분에 그렇게 고대하던 몰디브 또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트리밴드럼에서 몰디브까지는 비행기가 왕복 20만원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에 남인도를 오게되면 꼭 몰디브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바다에 뛰어들진 못하더라도 매일 해변가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코발람에서 2008년의 마지막을 보냈다.

 

 

▶ 2008년의 마지막 해

 

 

▶ 연말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이날만큼은 나도 고급 레스토랑에서 분위기를 잡아보고 싶었다. 달밤 아래 운치있는 코발람의 해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레스토랑에 큰맘 먹고 들어가긴 했는데 요리가 생각보다 배는 비쌌다. 결국 뻔뻔하게 코스요리를 1인분만 시켜 나눠먹어야 했던...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코발람에서의 추억.

 



▶ 송년 특별 코스의 베이비 랍스터. 어찌나 작은지 새우보다도 먹을게 없었다.

 

▶ 신년 축하 파티

 

12시가 되자 모두 다 함께 카운트 다운을 외쳤고 해변에서는 폭죽을 쏘아올리고 악기를 연주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흥에 겨워 춤을 추었다. 이 때 만큼은 외국인, 인도인 할 것 없이 라이트 하우스 해변으로 모두 몰려들어 함께 어우러졌다. 우리도 함께 그 분위기에 젖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해피 뉴 이어"를 외치며 악수를 나눴다. 모두 눈만 마주치면 서로서로 새해 인사를 하며 악수를 하고 포옹을 했다. 그 기회를 틈타 외국 여자를 안아보겠다는 심산으로 무작정 달려드는 인도인들도 더러 있었다. 

 

그 때 출동한 경찰들!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인도인들은 반대쪽 해변으로 돌아가라고 몰았고 술에 취해 별 반응이 없는 인도인들을 때리거나 윽박지르기도 했다. 외국인인 우리에겐 위험하니 어서 빨리 숙소로 돌아가라고 겁을 줬다. 서로 엉켜 있던 외국인과 인도인은 다시 반으로 나뉘어 흩어졌다. 한바탕 소동을 겪고 돌아오는 깜깜한 골목길에는 경찰을 피해 구석진 곳에 숨어 눈만 반짝이던 인도인들 때문에 몇번이고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린 코발람에서 다른 어떤 때보다도 가장 익사이팅하게 새해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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