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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마두라이] 혼잡한 도시 마두라이에서 만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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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에 마두라이는 없었다. 안그래도 더운 남인도에서 도시의 매연과 소음에 시달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제대로 된 숙소를 찾지 못한 폰디체리에 계속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깐야꾸마리까지는 버스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외의 지역은 계획한 루트에서 너무 벗어나 버리기 때문에 결국 마두라이행을 결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표가 없어 몇군데를 돌아 다니다 겨우 취소자가 생겨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저녁 무렵 올라탄 버스는 예상외로 깨끗한 신식 버스였지만 내 자리는 맨 뒷좌석이었고 의자 뒤로 짐을 잔뜩 실어 의자를 젖힐 수가 없어서 각을 잡고 앉은채로 12시간 이상을 이동해야했다.

 

그렇게 이른 아침 마두라이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이 아닌 길거리에 쫓기듯이 내린 우리는 멍한채로 한참을 두리번 거렸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썰렁한 새벽 길거리에서 헤매다 마침 문을 열고 있는 가게에 들어가 밀즈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마두라이의 유명한 사원인 스리 미낙쉬 사원으로 향했다. 그 근처가 여행자 거리이니 숙소를 찾을 생각이었다. 오토릭샤를 타고 여기저기 호텔들을 가봤지만 모두 만실. 폰디체리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무거운 가방을 맨 채로 뙤약볕에 하루종일 숙소를 찾으러 돌아다녔던 악몽이 떠올라 바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영버스로 깐야꾸마리행은 이미 매진. 깐야꾸마리는 우리나라 땅끝마을처럼 인도의 남쪽 끝이기 때문에 인도인들에게 종교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라고 한다. 때문에 연말연시를 그 곳에서 보내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든다고...

 

버스 터미널 근처의 현지 여행사에서 미니버스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얘기에 사기가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어 예약을 했다. 밤 늦게 출발이기 때문에 여행사에 짐을 맡기고 마두라이를 둘러보기로 했다. 사실 덥고 혼잡한 마두라이를 돌아다니기 보단 비싼 숙소라도 좋으니 한 숨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인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원이라는 스리 미낙쉬 사원. 원래대로라면 저 높은 탑이 화려한 색감의 촘촘한 조각들로 가득 메워져 있어야 하는데 마침 보수 때문인지 뭔지로 거적대기로 완전히 가려 놓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두라이에서 유일하게 기대했던 볼거리였는데..허허...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

 

 

다음으로 찾아간 티루말라이 나약 궁전 은 보수공사가 한창이라 집중하고 감상할만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 웅장하고 화려함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내부에서 올려다본 천장. 깨끗하게 새로 단장한 모습이 세월의 흔적을 지운 듯해 아쉽긴 하지만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들은 그래도 여전히 아름답다.

 

 

간디 박물관까지 다녀왔는데도 버스 시간이 남아 마지막으로 거대한 인공 저수지인 마리암만 떼빠꿀람 탱크에 다녀왔다. 저수지 한가운데에는 힌두사원 하나가 자리하고 있는데 석양 빛을 받아 마치 황금사원처럼 눈이 부셨다. 호젓한 풍경이 의외로 운치가 있어 저수지 둘레를 따라 산책을 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저수지 둘레에 띄엄띄엄 자리한 벤치에는 인도 연인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우리 역시 시간이 남아 이 곳에서 사람 구경이나 하며 시간을 떼우기로 했다.

 

그 때 우리 바로 앞에서 길거리 음식을 팔던 아저씨. 무슨 야채 볶음 같은 요리였는데 맛이 좋은지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마침 배가 고파 한번 먹어볼까 싶어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맛은 있는지 물어보자 대뜸 한접시 건네는 아저씨. 돈은 안받겠다고 했다.

 

 

모처럼 외국에서 여기까지 찾아 온 '손님'이니 선물을 하고 싶다고...천원도 하지 않는 저렴한 길거리 음식이지만 아저씨의 진심이 느껴져 그 어떤 비싼 선물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하루종일 시간을 떼우기 위해 별 관심도 없는 관광지를 돌아다니느라 힘들었는데 그 피곤함과 짜증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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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처에서 놀고 있던 아저씨 조카들

 

▶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한 아저씨 동생

 

▶ 한창 놀고싶은 나이일텐데 아버지 옆에서 묵묵히 설거지를 하고 심부름을 하던 일찍 철이든 착한 훈남 아들.

 

한사코 돈을 받지 않으시겠다는 아저씨와 실랑이를 하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아저씨보다 가족들이 더 신이 났다. 최대한 멋진 폼을 잡고 찍힌 사진을 검사하더니 '다시'를 외치며 쑥스러워하면서도 또 한번 포즈를 취하던 순박한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미소짓고 있는 나를 깨닫고는 내가 계획에도 없던 마두라이에 오게 된 건 바로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긴 여행에 지친 내게 다시한번 여행의 설레임과 감사함을 깨우치기 위해 그리고 여행이 점점 끝을 향해 가면서 나도 모르게 순간순간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있는 내게 고민할 거 없다고... 행복은 이런 거라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마음이 통하는 순간의 뭉클함.. 서로에게 보내는 온기.. 그걸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라고...

내 안의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 덕분에 어떠한 매력도 없을 것만 같던 먼지 날리는 혼잡한 도시 마두라이에서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득 충전한채 나는 다음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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