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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보드가야] 불교 최고의 성지 보드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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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대로 돌아가야하나, 아님 인도에 좀더 남을 것인가 밤새도록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 내가 다시 이렇게 여행할 수 있겠어..

지금 돌아가나 몇달 뒤에 돌아가나 어차피 한국에서의 생활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일텐데

그렇다면 차라리 이 기회에 맘껏 여행을 즐기자.

 

그래서 결국 난 인도에 남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이 바빠졌다.

이제 난 바라나시로 갈꺼야.

모든이들이 찬양해마지않는 그 바라나시에서 유유자적하며 악기도 배우고 자이살메르에선 낙타를 타야지.

사막에서 쏟아지는 별을 바라볼꺼야...

이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다시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우린 바라나시로 향하는 길에 보드가야에 들르기로 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드가야는

부처가 태어난 룸비니와 열반한 꾸쉬나가르 등과 함께 불교의 최고 성지로 꼽힌다.

어렸을적 독실한 불교 신자이신 할머니를 따라

초등학교때까지 주말마다 절에 다녔던 나는 불교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다.

부처가 커다란 보리수 아래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참선을 할 때 

마귀들이 갖은 수단을 동원해 방해했지만 결국 깨달음을 얻었다는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어렸을적 화려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영상으로 강하게 머리속에 남아있다.

그러니까 불교에 관련된 유적들은 종교이고 역사이기 이전에 나에겐 향수이다.

보드가야의 상징, 마하보디 사원.

인도는 세계 3대 종교인 불교의 발상지이지만

그 유적들은 인근의 다른 불교국가들 보다 훨씬 초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불교는 천대받는다고...

이 마하보디 사원도 한때는 힌두교 사원으로 이용되었었다고 한다.

미얀마, 태국, 중국 등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불교가

막상 자기 나라에서는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게 참 아이러니다.

보드가야까지는 교통이 좀 불편한데

꼴까따에서 가야까지 기차로 이동한 후 보드가야까지는 오토릭샤로 이동했다.

생각보다 꽤나 먼 거리였다.

룸비니의 대성석가사에서의 포근했던 하룻밤을 기억하고

한국절인 고려사로 찾아갔지만 숙박은 불가능했다.

스님들이 단체로 수행을 가셨다나..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보드가야 사원 구경에 나섰다.

고려사는 좀 떨어진 곳에 있어서 사원까지는 마차인 통가를 이용했다.

색다른 경험이기에 나름 재밌었는데 역시나 탈 때와 내릴 때 말이 달라지는 아저씨.

좀전에 흥정할 때 자신에게는 그만큼의 돈을 지불하기로 했지만

거기에는 말에 대한 요금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말 먹이를 사줘야하니 돈을 더 달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ㅋㅋㅋ 짐도 많아 무거웠을테니 조금의 돈을 더 얹어주었다.

이제 그런정도는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사원을 구경하고 오랜만에 티벳 음식점에서 텐뚝을 먹고

식당에서 만난 보드가야에서 수행중이라는 서양인 스님과 잠시 대화를 한 후

바로 바라나시로 가기 위한 기차표를 끊었다.

나중에 역에 도착해서야 기차표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한참 실랑이를 했다.

정확히 어떤 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역원들에게 아무리 항의를 해도 애매한 대답만 할 뿐

기차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해결해줄 생각을 하지 않아 초조하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 때 우릴 지켜보던 건장한 체구의 서양 남자가 무슨일인지 물어보더니 직접 나서주었다.

우리가 좋게좋게 얘기할 땐 듣는척 마는척 그러더니

서양남자가 호통치듯 얘기하니 굽신굽신 바로 해결을 해주는 모습. 헐.. 

식민지 시절의 노예 근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정말 그런걸까?

아님 그냥 조그만 동양 여자애들이라 무시했던 걸까?

어느 쪽이든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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