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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뿌리] 한적하고 평화로운 어촌마을과 화려한 해변 휴양지 마린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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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 남인도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었다.

나는 바라나시에서 발길을 돌려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남인도를 먼저 돌고 올라가야 라자스탄 쪽에서 얼마든지 발길을 붙잡혀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었다.

 

바라나시에서 한동안 추위에 떤 탓도 있었다.

빨리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게 나는 귀국 티켓을 버리고 일정을 급 변경해 남쪽으로 향했다.

첫번째 목적지는 뿌리.

 

여행책자에 소개된 내용에 따르면

11~1월은 바닷가재 제철이라 아주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바닷가재를 맛볼 수 있다고 했다.

부푼 기대감과 함께 여행자들로 많이 붐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조그만 간이역처럼 생긴 뿌리역에 도착해

릭샤로 여행자 거리인 C.T 로드로 이동한 후 숙소를 찾아다녔다.

뿌리가 습도가 높은지 아무리 깨끗한 숙소라고 해도 객실은 모두 찜통이었고 쾌쾌한 냄새까지 났다.

중급 이상 호텔들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남아 전부 예약이 끝난 상황.

인도 여행중인 서양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맞춰 뿌리나 고아로 몰려간다던데 정말인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여행자 거리를 샅샅이 뒤지다 마음에 쏙 드는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했으니..

호텔Z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일반 저택처럼 생긴 게스트하우스.

창문이 많아 환하게 빛이 잘 들어오는 넓직한 방과 깨끗한 욕실,

예쁜 타일이 깔린 방 바닥과 방문 앞 휴식 공간이 마음에 들어 바로 4일을 예약해버렸다.

 

짐을 풀자마자 밀린 빨래를 해서 널고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하루를 보냈다.

흐리고 눅눅한 날씨 때문에 빨래를 전혀 할 수 없었던 바라나시에서부터 밀린 빨래를 헤치우니 마음까지 상쾌해졌다. 

우리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골목을 조금만 걸어나가면(1~2분?) 바로 해변이었다.

앞에 건물에 가려 전망이 아주 훌륭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오션뷰~

지은지 얼마 안된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열대 정원을 만들려고 준비 중인지 넓은 마당에 식물을 가꾸고 있었다.

 

우리가 묵었던 방문 앞 넓은 테이블과 마당.

두 방만 제외한 다른 방들은 복도를 지나 반대편에 있어서 이 공간만 따로 분리되어 있다보니

마치 큰 저택을 통째로 빌린 듯한 느낌이었다.

 

매일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차를 마시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행복했던 공간.

뿌리는 별로 볼 것도 없고 바다가 예쁜 것도 아니고...그저그래..라며 기대치를 낮추던 다른 여행자들의 얘기와 달리

내게 뿌리가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파란문의 복도를 지나면 다른 객실들이 있고 그 앞 별도의 건물에는 주인 가족들이 살고 있는데

다들 정많고 친절한 분들이었다.

커다란 개들이 세마리나 있는데 처음엔 짖어대고 경계하더니 나중엔 친해져서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놀러오기도 하고 외출했다 돌아올 때마다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맞아주곤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골목을 조금 걸어나가면 바로 해변가인데

여행자 거리인 C.T Rd 쪽 해변은 해수욕을 즐길만한 곳은 아니다.

이 지역은 어촌이라 고깃배들이 다니는 부두이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천 화장실로 이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 산책 나갔다가

파도가 밀려들어오는 경계 부근에 앉아 볼일을 보는 사람들 때문에 기겁을 하며 다시 돌아온 적이 있다.ㅎㅎ

해변가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고깃배와 그물을 수선하느라 분주했다.

마을사람들 여럿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며 바쁜 손을 움직이는 모습이 우리나라 어촌과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가장 다른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배.

나무를 깎아 이어붙여 만든 조그마한 배를 보고 설마 이걸로 어떻게... 하고 생각했는데

바다를 보니 이미 똑같이 생긴 여러척의 배들이 어획에 한창이었다.

이런 배로 고기잡이를 하는 장면은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건데... 마냥 신기했다.

 

그물을 다듬는 그들의 모습은 풍족하지 않은 서민들의 고단한 일상 중 한 장면이었지만

따스하고 눈부신 햇살 때문인지, 틈틈이 터져 나오는 웃음 소리 때문인지

밝고 건강한 따뜻하고 기분좋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뿌리에 머무는 동안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었고

매일 아침 허니비 베이커리에서 갓구운 맛있는 빵과 커피로 배를 채운 후

해변가를 거니는 것은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었다.

C.T Rd에서 사이클릭샤를 50루피에 대절해 마린 퍼레이드까지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마린 퍼레이드는 C.T Rd에서 도보로도 갈 수는 있지만 워낙 해변이 길기 때문에

해변도로 끝까지 다녀오려면 릭샤를 이용해야만 한다.


성수기이고 분명 좋은 호텔들은 예약이 꽉 찼음에도 불구하고 C.T Rd쪽엔 돌아다니는 여행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매일 그 길을 배회하는 우리는 릭샤꾼들에게 잠재고객으로 소문이 났는 모양인지

숙소 앞 도로변에는 늘 릭샤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성수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거리가 썰렁했는데 식당이나 상점 주인들은

2004년도의 동남아 대지진 이후 손님이 거의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이 곳까지도 그 여파가 있는 줄 몰랐던 나는

줄곧 여행객들이 없어 한산하고 좋다고 생각했었던게 너무도 미안해졌다.

지금은 여행객들이 많이 늘었을까...

뿌리 정말 좋은 곳인데...

 

우릴 태운 릭샤 아저씨는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가이드를 자청해

마린 퍼레이드를 왕복하는 동안 틈틈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마린퍼레이드는 C.T Rd와는 달리 연말을 이용해 여행에 나선 인도 부유층 관광객들로 엄청나게 붐비고 있었다.

 

따뜻하다고는 해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해수욕을 즐길만한 계절은 아니었기에 해변은 한산한 편이었지만

반대편엔 비치의류를 파는 상점들이 밀집해 있었고 음식점은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해변을 따라 숙소들도 빽빽이 늘어서 있었는데 시설도 여행자거리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연말 축제분위기 속에서 인도인들에 섞여 하루정도 보내보는 것도 특별하겠다 싶어서

마음에 드는 숙소 몇군데에 들어가 문의를 해봤는데 다 빈방이 없다고 한다.

외국인이라서 거부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하루 묵는 건 포기하고 일몰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릭샤 아저씨가 안내하는대로 해변도로 바로 옆에 있는 화장터에 들렀다.

하지만 바라나시에서의 화장 모습과는 전혀 다른 처참한 환경...

그냥 흙으로 된 광장 같은 곳에서 아무데나 땔감을 대충 놓고서 시체를 태우고 있었다.

그저 몇명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옆에서는 지켜보는 이 하나 없이 타고 있는 시체들도 있었는데

관리인인 듯한 사람이 잘 타고 있는지 불쏘시개로 뒤적이며 지나갔다.

샤 아저씨가 설명하길 이 곳엔 부랑자들도 많은데 그런 이들 중 하나라고...

바라나시에서 매일 바라보던 경건한 분위기의 화장터와는 너무 다른

레기 소각장과도 같은 너저분한 환경과 가족 하나 없이 끔찍한 외로움 속에 마지막을 맞았을 이가

홀로 타들어가는 모습은 너무도 충격적이었고 그 참담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부디 다음 세상에서는 외롭지 않길....

뿌리는 내게 여러모로 인상깊은 멋진 곳이었지만 한가지 불만스러운 것은 식사 메뉴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는 것이었다.

신선하고 저렴한 해산물을 잔뜩 기대했었는데 제철이라던 여행책자와는 달리 현지는 먹거리가 전혀 없었다.

바닷가 레스토랑들을 뒤졌지만 바닷가재는 아직 잡히지 않는다는 대답뿐...ㅜ.ㅜ

그래도 백배에 소개된 레스토랑 제너두에서 먹은 꽃게탕은 눈물나게 맛있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시도해본 다른 음식들은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새우 요리를 시키자 10년은 얼려뒀던 것 같은 건조하고 퍽퍽한 새우가 나오거나

모든 음식이 너무 짜거나 싱거웠다.

결국 제너두에서는 무조건 꽃게탕만 먹어야한다는 결론...

다른 레스토랑에서는 비싼 가격의 라씨를 시켰더니 썩은행주같은 맛이 나서 먹을 수가 없었는데

그걸 본 주인이 맛을 보더니 백배 사죄하며 음식값을 환불해주었다.

나는 평소 미식가도 아니고 육류가 아닌 이상 왠만하면 뭐든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뿌리는 정말이지 먹거리가 결여된 곳이었다.

허니비 베이커리의 빵과 커, 제너두의 꽃게탕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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