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3
델리에서 암리차르로 향하는 길...
드디어 인도 기차의 첫 경험이다.
여러 여행수기를 통해 내 머릿속에는 '인도 기차= 낭만'이라는 환상이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환상일 뿐이었으니...OTL
현실에서는 그저 더럽고 지저분하고 불편한 이동수단일 뿐이었다.
우리가 이용한 슬리퍼 클래스의 3층 침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해간 물티슈로 바닥을 다 닦아내야 했는데
먼지가 수북이 쌓인데다 그 먼지를 다 걷어내도
그 아래 찌든 때는 닦고 닦고 또 닦아도 물티슈에 새까맣게 묻어나왔다.
밤새 온갖 벌레들이 기어다녔고
벌레라면 질색하는 친구는 바퀴벌레를 보고 소리를 질러대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우리와 함께 앉아있던 인도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킥킥대더니
아주 여유로운 손놀림으로 바퀴벌레를 맨손으로 잡아 창밖으로 버렸다.
아악...
우린 바퀴벌레를 봤을 때보다 더 놀라 그대로 얼어버렸다.
화장실은 더욱 끔찍했다.
바닥에 뻥 뚫린 구멍과 질퍽한 바닥, 덜커덩 거리는 차체...
과장이 아니라 정말 기차가 덜컹 거릴때마다 미끄러져 구멍에 빠질 뻔 했다.
나중엔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긴 했지만..ㅎㅎ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끔찍하던 그 곳에 시간이 갈 수록 적응이 되어갔고
여행이 끝난 지금엔 역시나 낭만으로 기억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바퀴벌레 사건으로 옆자리에 앉은 인도인들과 가까워졌고
그 중 큰 터번을 쓴 시크교 할아버지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통역을 하며 더욱 친해졌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터번 할아버지는 자신의 도시락을 꺼내 우리에게 권했다.
사양할 수 없는 상황이라 먹으려 하는데 할아버지가 직접 짜파티에 커리를 싸서 입 앞에 갖다댔다.
그런데 이 손.은!!
좀전에 바퀴벌레를 잡았던 그 손!!!
식사 전에 씻고 오는 것 같긴 했지만 비누 같은게 있을리도 없고...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입에 넣기는 했으나 맛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바퀴벌레를 씹는 둣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첫 기차안에서의 힘겨운 밤을 보내고
새벽녘 쌀쌀한 기운에 잠이 깨어 1층으로 내려와 창밖을 바라보았다.
안개가 자욱한 풀숲의 새벽 풍경은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짙은 초록의 풀 숲 사이로 순간순간 안개가 걷힐 때마다 별안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다가
다시 안개에 묻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꿈을 꾸는 건가...
황홀한 풍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데 순간 안개가 확 걷히더니
여러명의 모습이 동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들은 모두 한손에 깡통을 들고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인도 여행 중에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
바로 아침 쾌변 모습이었던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전혀 못하고 인도로 온 내겐 매 순간이 충격의 연속이었다.
이른 시간 암리차르 역에 도착한 우리는 터번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헤매지 않고, 바가지 쓰지 않고 바로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숙소까지 따라온 할아버지는 우리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오토릭샤비를 대신 지불하고
숙소 상태와 가격까지 꼼꼼이 살피셨다.
황금사원까지 릭샤비는 15~20루피 정도가 적당하다고
그 이상은 절대 내지 말라고 당부까지 하고서야 이별 인사를 나눴다.
사기가 난무하는 인도에서는 인도인들끼리도 믿지 못하는데
정직하고 성실한 시크교도들만은 믿을만 하다고들 한다.
델리에서 지치고 지쳤던 몸과 마음이 말끔이 치유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을 믿지 않는 나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에게 언제나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우리가 황금사원을 찾은 것은 한낮이었다.
시크교의 성지인 황금사원은 맨발로만 들어갈 수 있기에 신발을 보관소에 맡기고
또한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되기 때문에 꼭 모자를 쓰거나 두건을 써 가려야한다.
입구에서 두건을 무료로 빌려준다.
두건을 쓰고 입구 앞에 있는 물 웅덩이에서 발을 헹구고 안으로 들어가면
비로소 새하얀 건물과 새하얀 대리석 바닥으로 둘러쌓인 호수,
그리고 그 한가운데 떠있는 아름다운 황금사원을 만날 수 있다.
터번을 쓰고 한쪽에 보석들이 화려하게 박힌 금으로 만든 큰 칼을 찬 사람들이 지나갔다.
기골이 장대한 그들은 마치 페르시아 왕자라는 게임에 나오는 무사들 같았다.
시크교도들에겐 터번과 함께 지켜야할 규칙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칼을 몸에 지니는 것이라 한다.
이슬람교도들에게 그들의 성지인 이 황금사원을 빼앗기고 핍박받았던 아픈 역사,
무력으로 다시 탈환한 투쟁의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종교란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있는 것일텐데
그 종교란 것으로 인해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이런 피비린내 나는 참극이 벌어진다는 게 참 아이러니다.
한낮의 사원은 발을 딛기가 두려울 만큼 뜨거웠고
무더위에 지친 우리는 주변 명소들을 둘러본 후 돌아가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에 다시 황금사원을 찾았다.
▶황금사원 앞의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먹은 '파니르 베지터블 초우면'(치즈 야채 볶음면)
백배 책에 소개된 곳인데 음식 맛이 기대이상이었다.
밤에 다시 찾은 황금사원은 조명과 호수에 투영된 모습으로 인해 훨씬 더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사원안에는 확성기를 통해 경전을 읊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신도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따라 읊조리고 있었다.
사원엔 성스러운 기운이 가득 찬 듯 했고 나까지 그 경건함에 감화되었다.
종교의식이 진행되고 있기에 우리도 줄을 서봤다.
시크교에는 천주교의 신부처럼 그들의 종교 지도자이자 정신적 스승인 '구루'가 존재한다.
무한한 존경심으로 사원의 문턱에 입을 맞추며 들어가는 인도인들을 따라 나도
구루에게 존경을 표하고 축복을 받았다.
호수에서는 사내들이 몸을 씻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신을 향한 그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어떻게하면 저리도 순수하게 믿고 따르며 열망할 수 있는 것일까.
늘 의심하고 계산하다보니 어떤 일에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내 자신이 안쓰러워졌다.
저렇게 순수하게 믿을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감사하고 행복하겠지.
신이 있느냐 없느냐는 어쩜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원을 향하여 명상에 잠긴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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