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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카트만두- 인도 다르질링]홍차의 산지 다르질링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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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01

 

카트만두에서 인도로 다시 넘어가기 위해 네팔 국경인 까까르비타쪽 국경을 넘기로 루트를 정했다.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소나울리 국경은 이미 한번 지나왔기 때문에 새로운 루트로 국경을 넘어보고 싶기도 했고

차의 세계최대산지 중의 하나인 다르질링에 꼭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쪽 국경에 대해선 정보가 너무 없는데다 여행자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니어서

중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도움 받을 곳이 없다는게 제일 걱정이었다.

그래서 다르질링까지 연결하는 모든 교통편을 한꺼번에 묶어서 판매하는 여행사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처음 찾아간 여행사에서 절망적인 소식을 들었다.

국경까지 가기 전에 큰 다리가 있는데 몇일 전 태풍인지 뭔지로 다리가 끊겼다고 한다.

본인 생각에 네팔에서는 워낙 뭐든 느리기 때문에 다리 복원에 몇달이 걸릴지, 복원이 되기는 할지도 미지수라고...

다른 여행사에서는 끊어진 다리까지 버스로 가서 배를 타고 건넌 후 다시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요금을 너무 비싸게 불러서 후퇴...

그렇게 돌아다니다 마지막 갔던 여행사에서 다리 상류쪽을 돌아서 버스로 한번에 국경까지 가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까까르비타까지 보통때보다 좀 더 걸리긴 하지만 13시간이면 된다고...

그 여행사에서 국경까지 버스+국경에서 다르질링까지 가는 지프를 예약했다.

 

 

2008. 11. 02

 

버스에서 밤을 보내고나면 아침에 인도에 도착해 있을테니 가지고 있는 네팔 루피를 다 쓰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정말 굴러가긴 할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태였는데 밤새 차체에 난 구멍들과 창문틈으로 살을 에는 찬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인도 여행 중에 이렇게 야간버스를 타고 가다 새벽에 만나는 풍경들을 너무 좋아했는데

버스가 달리는 곳이 더 시골이기 때문인지

기차로 보는 풍경보다 훨씬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 신비로운 풍경들 중에서도 가장 최고였던 건 바로 카트만두에서 까까르비타로 가는 도중의 풍경이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늪에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야생연꽃들이 군락을 이루어 피어 있었고

그 늪을 가로질러 나 있는 길 위를 우리가 달리고 있었다.

사진에 담아오지 못한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낮 12시가 되었건만 여전히 차는 알 수 없는 황무지를 달리고 있었다.

이미 20시간은 지난 상태... 작은 가게 앞에서 잠깐 쉬었지만 네팔돈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화장실이라 해서 가보니 지붕도 없고 문도 없이 벽만 쳐놓은 여행 중에 가장 공포스러웠던 '평면 화장실'이었다.

그냥 평평한 평지 바닥에 여러명이 볼일을 봐야하는 구조..

남자들은 아무데서나 해결을 할 수 있었지만 여자는...정말 난감하다.

 

시골 농촌을 한참 달려 저녁 무렵에 작은 마을에서 다시한번 멈췄다.

차들이 한쪽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운전기사가 내가 차에서 내려 돌아다닌 걸 자꾸 견제를 했는데

중국계인 듯한 버스내에 유일한 현지여성이 설명해주기를

끊어진 다리를 피해 돌아오느라 이미 네팔과 인도의 접경마을에서 국경을 넘어 인도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네팔로 들어가는 국경을 지나 목적지인 까까르비타까지 가야한다는 것.

그러니 우리는 지금까지 네팔과 인도의 접경지역을 에스자를 그리며 들어갔다 나갔다 해온 것이다.

경찰에게 걸리면 무단으로 국경을 넘은 나는 잡혀가 강제출굴을 당할 것이고

운전자는 큰 벌금을 물게 된다고....

그 다음부터 버스안의 모든 승객들은 나를 숨기는데 힘을 모았고

나는 도중에 경찰들이 있는 곳에서는 숄을 둘러 얼굴을 가리고 자는 척을 해야 했다.

검문을 당할 때마다 너무 긴장해서 다르질링에 도착하기 전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모든 고비를 넘기고 안전한 장소에 도착해 늦은 저녁을 먹을 때

역시나 돈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자 이번엔 버스에서 어려움을 같이 극복한 승객들이

물이며 음식을 사주었다.

인도루피라도 주려 했는데 너무 고생이 많았다며 받질 않았다.ㅜ.ㅜ

 

우여곡절 끝에 하루를 꼬박 보내고 새벽녘에 가까스로 까까르비타에 도착.

33시간을 달린 후였다.

갈아타기로 했던 지프는 이미 떠났고 더러운 숙소에서 물도 나오지 않아 3일째 씻지 못한채 잠을 청했다.

이 긴긴 여행 중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구간은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 중 하나이다.

 

 

2008. 11. 03

 

실리구리에서 지프를 타고 도착한 다르질링은

영국인들이 식민지시절에 휴양지로 삼았던 곳이어서 그런지 유럽느낌의 건물들이 많다.

인도, 네팔과는 또 다른 느낌의 사람들...

노점상에서는 예쁘고 섬세한 갖가지 저렴한 수공예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대량생산해 온 제품들도 섞여 있는데 불량도 많고 질이 좋지 않다...고 상인들이 말했다.

 

이 곳은 원래 시킴 왕국의 땅이었는데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영국이 물러나면서 현재는 인도에 속하게 되었다고..

인도의 웨스트뱅갈주에 속하지만 워낙 멀리떨어진 산마을이다 보니 행정적으로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아저씨는 이 곳이 교육시설도 부족하고 아이들 취업도 힘들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차피 관리도 못할거면 분리를 시켜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

 

'We Want Gorkhaland'

웨스트벵갈주로부터 분리된 자치체제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

다르질링에서는 평화적인 시위를 하고 있었고 부근을 여행하는동안 어디서든 이 문구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바램이 인도 정부에 닿기나 할런지...

대대로 이어지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남아있다.

겉으론 산 위 풍경 좋은 휴양지로만 보이지만 밤만 되면 기온이 뚝 떨어져 한겨울 날씨가 되는 이 곳에서

낮에는 노점상을 하고 밤에는 갑판대에서 이불하나 둘러쓰고 잠을 자는 사람들,

물론 그마저도 없이 찬바닥에서 몸을 웅크린채 괴로운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을 보면 여행자라는 내 신분이 한없이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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